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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과학이란 무엇인가?

토머스 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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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다임(paradigm)’은 리얼리즘(realism)만큼이나 다양한 뜻을 지닌 개념이다. 이 말은 널리 퍼트리는데 기여한 미국의 과학사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인 토머스 쿤(Thomas Kuhn, 1922-1996)은 패러다임을 22가지 의미로 사용했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다.

‘패러다임(paradigm)’은 리얼리즘(realism)만큼이나 다양한 뜻을 지닌 개념이다. 이 말은 널리 퍼트리는데 기여한 미국의 과학사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인 토머스 쿤(Thomas Kuhn, 1922-1996)은 패러다임을 22가지 의미로 사용했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다. 따라서 패러다임이 뜻하는 바가 모호하다는 지적은 설득력을 얻는다.

게다가 패러다임이란 말을 사용하는 분야가 늘어나면서 이 용어는 모호함을 더한다. “오늘날에는 수없이 많은 ‘새로운 패러다임’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며, 지리학이나 아동 심리학 혹은 경영학에서부터 ‘뉴 에이지’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영역에서 이 단어가 사용된다.”(『과학혁명의 사상가 토머스 쿤』에서)

아무튼 패러다임은 리얼리즘보다는 일상에서의 노출이 잦다. 특히 언론매체에서는 그렇다. 신문을 보자. 다음은 논설위원들이 번갈아 쓰는 어느 신문 작은 칼럼의 한 구절이다.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생산성이 계속 높아져야 하는데, 이때 패러다임을 바꾸지 못하면 위기를 맞는다.”(<한겨레> 2005년 12월 29일자 26면)

쿤의 가장 유명한 용어인 패러다임이란 무얼 말하는가? 패러다임은 쿤이 창안한 용어는 아니다. “그가 채용한 이래로 패러다임은 유행이 되어 왔다.” 패러다임은 문법 교육에서 유래한다. 어형 변화표로 옮겨지는 패러다임은 문법에서 하나의 예제를 가리킨다. 한 패러다임을 이해했다면 새로운 환경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그것을 활용할 수 있다.

패러다임에는 ‘범례(exemplar)’ 말고도 ‘학문 모체(disciplinary matrix)’의 측면이 있다. “일반적으로 패러다임은 범례(들)를 중심으로 구성된 학문 모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의미가 합쳐져 있되 특별하면서도 타당한 방식, 예를 들어 진정한 과학을 ‘구획하는’ 방식으로 합쳐져 있는 것이다.”

패러다임 용어 설명은 웨슬리 샤록과 루퍼트 리드의 『과학혁명의 사상가 토머스 쿤』(김해진 옮김, 사인언스북스, 2005)에 나오는 것이다. 영국의 소장 인문학자 두 사람이 지은 이 책은 쿤 사상의 난해함을 어느 정도 덜어준다. 두 사람은 ‘서론’에서 쿤의 명성을 “되풀이해서 야유”한 스티븐 와인버그와의 대비를 통해 쿤에게 다가선다.

“쿤은 실제 과학에서의 진보 가능성을 배제하진 않지만, 과학이 어떤 목표를 향해 진보한다는 생각은 거부한다. 반면에, 와인버그는 과학은 어떤 목표를 향해 진보하며, 과학의 진보가 객관적 진리에 좀 더 가까이 가도록 해 준다고 주장한다.” 또 “쿤은 와인버그가 찾고자 하는 것, 즉 어려운 문제를 푸는 만족감을 넘어선 어떤 목적 같은 건 인정하지 않는다.”

샤록과 리드는 쿤이 명성을 얻은 까닭을 역사에 관한 연구를 철학화한 때문으로 본다. “쿤은 다르면서도 서로 연관된, 질적으로 다른 두 가지 목적, 즉 역사적인 것과 철학적인 것을 주도면밀하게 추구했다.” 또한, 쿤은 “결과물의 거대한 저장소에 새로운 과학의 결과들을 차곡이 쌓는 것으로 과학을 이해하는” 시각을 거부한다.

“쿤은 하나의 패러다임이 다른 패러다임만큼 논증적으로 훌륭하다고 말하지 않으며 다른 패러다임보다 한 패러다임이 선택되는 정당한 이유를 입증할 수 있다는 주장도 거부한다. 쿤은 사태가 나중에 어떻게 판명되었는지와는 관계없이, 당시의 역사적 정황을 재구성하는 데 관심이 있다(그는 휘그적 해석을 거부한다.).”

쿤이 누적에 의한 과학 발전의 이미지에 동의하지 않긴 해도, 과학이 성취한 것들을 부정하거나 합리성, 진보, 지식의 누적에 대한 전망들마저 부인하진 않는다. 그는 “단지 이러한 개념들에 대한 수용된 (사실상 무역사적(無歷史的)이며 형식적인) 과학 철학의 해석만을 반대할 뿐이다.”

샤록과 리드의 쿤 해설서는 독자가 쿤의 주요 개념을 이해하는 부담도 덜어준다. 우선, “패러다임은 사회학적으로 기교를 부리는 용어가 아니다.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은, 무엇보다도 발전의 초기 단계와 후기 단계, (진정한) 자연 과학들과 사회 ‘과학들’ 간의 대비를 확연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정상 과학(normal science)’은 “학문 모체 내에서 하나의 패러다임에 근거한 그리고 인정된 범례들에 근거한 과학이며, 기반들이 의문시되지 않을 때 수행되는 과학이다.” 정상 과학이 보편타당한 과학을 일컫는 것은 아니다. ‘과학 혁명(scientific revolution)’은 “한 패러다임이 다른 패러다임을 대체하는 시간이다.”

샤록과 리드는 “혁명의 ‘시간’은 언뜻 드는 생각이나 전통적으로 생각되어 온 것보다는 훨씬 기간이 긴 특징을 가지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각주에 덧붙였다. ‘세계 변화(world changes)’와 ‘공약 불가능성(incommensurability)’에 대한 설명도 유익하다. 이런 방식이 교재에 실린 불완전한 정의보다는 이들 개념을 문제 풀이에 적용하는 것이 용어의 의미를 깨우치는 데 한결 낫다는 쿤의 주장과 어긋나긴 하지만 말이다.

『과학혁명의 사상가 토머스 쿤』은 쿤 저작의 개요를 설명하기도 한다. 쿤은 과작(寡作)의 저자다. 그런데도 한국어판이 나온 것은 현재로선 『과학혁명의 구조』뿐이다. 샤록과 리드는 “『구조』의 주요 목적은 실제로 어떻게 과학자들이 한 이론으로 다른 이론을 대체하게 되는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구조』는 쿤이 수행한 본격 역사 연구와는 다르다고 지적한다.

“쿤은 이 책에서 과학사 속의 다양하고 특수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일어난 역사적 사실의 문제에 집중하기보단, 오히려 그러한 에피소드들 안의 사건들을 철학적으로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말하고자 했다.”

<교수신문>은 2005년 12월 5일자(제381호)에 실린 2005년 학술서 번역 출판의 흐름을 살핀 기획기사에서 “가장 유명한 과학철학자로 꼽히는 토머스 쿤 역시 이름값에 비례하는 저술들은 소개되지 않고 있다”며, “최소한 『The Essential Tension』, 『The Road since ‘Structure’』 정도는 번역돼야 한다”는 학계의 의견을 전한다.

『과학혁명의 사상가 토머스 쿤』에서는 『필연적인 긴장』과 『‘구조’ 이후의 여정』도 언급하지만, 『코페르니쿠스 혁명(The Copernican Revolution)』과 『흑체 이론과 양자 불연속성, 1894~1912(Black-Body Theory and the Quantum Discontinuity, 1894~1912)』는 제1부 제2장 「역사적 사례 연구」를 통해 자세히 다룬다.

이 책 ‘옮긴이의 글’은 쿤의 생애와 사상을 적절하게 간추린다. 이에 따르면, 쿤은 대학의 정교수 임용에서 두 번이 탈락하는 아픔을 맛본다. 1956년 쿤은 첫 저서인 『코페르니쿠스 혁명』을 펴내기 직전, 이 연구를 바탕으로 하버드대 사학과의 정규 교수직 승진심사를 받았으나 통과하지 못했다. “쿤의 책이 교육용 교재로는 적합하지만 학문적으로 높은 수준의 책은 아니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또, 쿤은, 그의 말을 빌리면, “에덴동산으로부터 추방”되는 충격을 겪기도 한다. 『과학혁명의 구조』가 나오기 1년 전, 그는 버클리대 철학과 정교수직 승진에서 탈락한다.

번역자 김해진은 쿤이 최종적으로 “패러다임의 변화, 즉 과학 혁명을 과학종(scientific kind)의 사전적 분류 체계(lexical taxonomy)의 변화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패러다임의 변화는 한 과학적 공동체에서 사용하는 (과학적) 종 용어의 사전적 분류 체계가 변화했음을 의미하며 한 언어 체계 내의 (과학적) 종 용어는 비중첩 원리의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 혁명은 (과학적) 종 용어의 의미 변화를 가져오는 과학 종의 사전적 분류 체계의 변화를 의미한다.”

아울러 “쿤에 따르면 현재의 패러다임과 과거의 패러다임을 평가할 소위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논리적 기준은 없다. 패러다임 간에는 공약불가능하다.” 그리고 “패러다임의 이동은 일방적이다.” 과거 패러다임으로의 회귀하는 일은 결코 없다는 것이다. ‘옮긴이의 글’은 쿤의 성격의 일단을 전달하기도 한다.

“토머스 니클스에 따르면, 쿤은 흥분을 잘 하고 신경이 날카로우며 참지 못하는 성격의 소유자로 어떤 전문 분야에도 만족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항상 아마추어로 남게 되었다고 한다.” 반면, 쿤이 버클리를 떠날 때 오히려 동료 교수들에게 미안해했다고 한다. 쿤은 제자를 거의 두지 쪾았다. 쿤이 생전에 제자로 인정한 사람은 폴 포맨, 존 헤일브론, 제드 부크월드, 이 셋뿐이다. 『세계 지식인 지도』(산처럼, 2002)에서는 쿤 학파의 일원으로 서울대 김영식 교수를 꼽기도 한다.

‘옮긴이의 글’은 번역되지 않은 쿤 관련서를 소개하는데, 이 중 『토머스 쿤- 우리 시대를 위한 철학적 역사(Thomas Kuhn: A Philosophical History for our Times)』(2000)를 쓴 스티브 풀러의 시각이 눈길을 끈다. 풀러는 쿤의 평생 스승인 당시 하버드대 총장 제임스 코넌트의 냉전적 비전과 당대의 냉전 논리가 그대로 쿤의 사상에 스며들었다고 여긴다.

“쿤의 이론이 말하는 과학의 독립된 자율성의 가치는 사실 독립적이지 않다. 오히려 정치?사회적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한 미국의 이데올로기에 봉사하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 풀러에 따르면 결국 쿤은 상위 가치인 미국의 이데올로기를 위해 과학의 내적 자율성이란 하위 가치의 허상을 미국 사회에 구축한 인물인 셈이다.”

한편, 미국의 물리학자 앨런 소칼이 벨기에 물리학자 장 브리크몽과 함께 포스트모던 사상가들의 과학 남용을 비판한 『지적 사기』(이희재 옮김, 민음사, 2000)에서 소칼이 쿤을 비판한 대목은, 같은 미국인이라 그런지 몰라도, 어째 뜨뜻미지근하다. 아래는 이 책의 제4장 「간주곡: 과학철학의 인식론적 상대주의」에서 ‘쿤과 패러다임의 공약불가능성’을 다룬 부분의 맺음이다.

“이처럼 이론들의 차등성은 우리의 신념 체계 안에 깊이 뿌리박힌 것이므로 과학적 연구 결과의 신뢰성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려는 사회학자나 철학자가 쿤의 역사관에서 자신들의 논증에 도움이 되는 원군을 발견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과학혁명의 사상가 토머스 쿤』의 한국어판은 옮긴이의 말처럼 『과학혁명의 구조』의 한국어판 쪽수를 표기하지 못한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쿤 입문서로 알맞다. 적어도 『과학혁명의 구조』와는 꼭 겹쳐 읽어야 할 것 같다.

『과학혁명의 구조』의 번역 역사는 짧지 않다. 1980년대 초반 한국어판 2종이 나란히 나왔는데 이화여대출판부(조형 옮김, 1980)에서 펴낸 것과 정음사(김명자 옮김, 1981) 판이 그것이다. 김명자 교수의 번역은 1992년 동아출판사를 통해 ‘최신 번역 보완판’으로 다시 나왔고, 1999년에는 까치로 발행처를 옮긴다.

까치 판 『과학혁명의 구조』를 읽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책의 중간쯤부터 읽는 속도가 붙긴 했어도 꽤 더뎠다. 아마도 번역문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번역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 아니라, 번역 문투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과학혁명의 사상가 토머스 쿤』에 이따금 인용문으로 등장하는 번역문이 한결 부드럽긴 하다.

『과학혁명의 구조』는 1962년 원서의 초판이 나왔다. 세월이 반세기 가까이 흘렀어도 낡았다는 느낌이 별로 안 든다. 쿤이 이 책에서 제시한 패러다임이 여전히 정상 과학의 틀 안에 있어서일까, 아니면 아직도 정상 과학의 패러다임과 경쟁하는 패러다임이어서일까? 내게 『과학혁명의 구조』는 다음 두 가지 측면만으로도 유명세에 값한다.

하나는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의 경구를 확산시킨 전거라는 사실이다. “새로운 과학적 진리는 그 반대자들을 납득시키고 그들을 이해시킴으로써 승리를 거두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자들이 결국에 가서 죽고 그것에 익숙한 새로운 세대가 성장하기 때문에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플랑크의 서글픈 술회를 그의 『과학적 자서전(Scientific Autobiography)』에서 먼저 접한 독자는 그리 많지 않을 듯싶다.

다른 하나는 칼 포퍼가 과학의 잣대로 내세운 반증가능성의 여파다. 포퍼는 “오류입증(falsification), 즉 검증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오류 입증은 그 결과가 부정적인 까닭에, 정립된 이론의 폐기를 불가피하도록 몰아간다”는 것이다.

동아출판사 판과 까치 판의 번역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X선이 1958년 11월 8일에서 12월 28일 사이의 어느 시점에 뷔르츠부르크에서 탄생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까치, 96쪽)라는 구절 역시 그렇다. 쿤이 과학 발견을 특정 시점으로 못 박기 어렵다는 것을 강조하는 의도적 표현이라면 몰라도, 이 구절의 연도는 오자가 분명하다.

쿤을 둘러싼 논란은 그가 세상을 떠나지 10년이 지났어도 식지 않고 있다. 쿤이 살아 있을 적에 논란은 더 뜨거웠다. 1965년 런던 정경 대학에서 열린 과학철학 국제학회는 쿤이 철학계의 전면에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학회의 심포지엄은 포퍼의 과학철학의 의의를 모색하기로 되어 있었지만, 쿤을 위한 심포지엄으로 변모하였다.

『현대과학철학 논쟁- 쿤의 패러다임 이론에 대한 옹호와 비판』(조승옥?김동식 옮김, 아르케, 2002)은 1965년 과학철학 국제학회의 성과물을 담았다. 발제문에 해당하는 「발견의 논리인가 탐구의 심리학인가?」에서 쿤은 그가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개괄한 과학 발전에 대한 견해와 포퍼의 견해를 비교 검토한다.

존 왓킨스는 「‘정상과학’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고, 마가렛 매스터만은 「패러다임의 성질」에서 패러다임 개념의 난맥상을 조목조목 따진다. 이 책 본문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임레 라카토스의 방대한 논문 「반증과 과학적 연구프로그램들의 방법론」은 포퍼의 논리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쿤과 포퍼의 논쟁을 살짝 다룬다. 쿤의 「비판에 대하여」는 그에게 쏠린 의문에 대한 응답이다.

이 밖의 쿤 관련서로는 배리 반즈의 『패러다임- 토마스 쿤과 사회과학』(정창수 옮김, 정음사, 1986)과 지아우딘 사더의 『토마스 쿤과 과학 전쟁』(김환석?김명진 옮김, 이제이북스, 2002)이 있다. 『토마스 쿤과 과학 전쟁』은 “포스트모던적 입장에서 쿤을 비판한 책”이라고 한다.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는 결국 과학이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에 대한 해명이 아닐까. “이 글이 겨냥하는 것은 연구 활동 자체의 역사적인 기록으로부터 드러날 수 있는 전혀 새로운 과학의 개념을 그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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