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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자와 기록자로 만나다

김산과 님 웨일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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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과 님 웨일즈는 특이한 커플이다. 두 사람은 1937년 여름, 중국 소비에트의 근거지 연안(延安)에서 두 달 남짓한 기간에 22번의 만남을 가졌다.

님 웨일즈?김산

김산과 님 웨일즈는 특이한 커플이다. 두 사람은 1937년 여름, 중국 소비에트의 근거지 연안(延安)에서 두 달 남짓한 기간에 22번의 만남을 가졌다. 그렇다고 이 만남이 ‘러브 어페어’나 스캔들을 의미하진 않는다. 당시 두 사람에게는 각기 배필이 있었다. 님 웨일즈의 남편은 『중국의 붉은 별』로 유명한 에드거 스노다.

김산과 님 웨일즈는 구술자와 기록자로 만났다. 그런데 두 사람의 만남은 그것 자체가 드라마틱하고 필연적인 것이었다. 김산의 연안행은 중국공산당 당적을 회복하기 위해서였던 걸로 보인다. 님 웨일즈는 연안에 한 달 정도 머물 예정이었다. 하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연안 체류 기간이 넉 달로 늘어난다.

연안에서 서안(西安)을 거쳐 북경(北京)으로 가는 차편에 자리가 없었고, 홍군의 서안행 트럭에 탑승하려는 계획도 무산되었다. 큰 비가 내려 도로가 유실된 탓이다. 님 웨일즈는 도로가 복구되는 가을까지 연안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만남은 책을 매개로 한다. 다음은 한국어판 개정 3판 『아리랑』의 들머리다.

“내가 그를 만난 것은 옌안(延安)에서였다. 그곳에 머물러 있던 1937년 초여름 어느 날, 나는 루쉰(魯迅)도서관에서 영문책자를 빌려간 사람들의 명단을 훑어보고 있었다. 불과 이러저러한 몇 권의 책만이 대출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한 사람의 이름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그 사람은 여름 내내 모든 종류의 책과 잡지를 수십 권씩이나 빌려가고 있었다.”

님 웨일즈는 부지런히 영문책자를 빌려간 사람을 수소문하여 면담을 하게 되는데, ‘『아리랑』 독서여록’을 엮은 백선기의 『미완의 해방노래- 비운의 혁명가 김산의 생애와 『아리랑』』(정우사, 1993)에 실린 「님 웨일즈의 ‘『아리랑』 회고’」에 의하면, 이러한 과정에 우리가 잘 아는 인물이 등장한다. 님 웨일즈와 그리 사이가 좋지 않았던 아그네스 스메들리다.

“나는 부탁한 도서관원 아그네스 스메들리(Agnes Smedley)와 함께 영문 서적을 빌려간 사람들의 명단을 훑어보았다. 많은 영문 책자를 빌려간 사람은 김산이었다. 그녀는 그에게 내가 그를 만나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그는 노트와 책들을 옆구리에 끼고 나를 만나러 왔던 것이다.”

님 웨일즈가 조선인 혁명가의 전기를 쓰고 싶다고 청하자, 김산은 고심 끝에 그녀에게 자신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들려준다. 님 웨일즈가 김산의 삶을 채록한 것은 중국 혁명가 평전 작업의 일환이었지만, 김산의 생애가 담긴 『아리랑(Song of Ariran)』(송영인 옮김, 동녘, 2005)은 이내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다.

원제목의 아리랑 영문 표기에서 보듯, 김산을 만나기 전 조선을 유람했어도, 님 웨일즈는 우리 문화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김산에게서도 〈동아일보〉의 창간 연도를 1년 앞당기는 등의 사소한 착오가 발견된다. 그렇다고 이런 실수들이 책의 명성에 흠집이 되진 않는다. 『아리랑』은 한마디로 불후의 명작이다.

『아리랑』이 이 땅에서 널리 읽히기 시작한 것은 1984년 도서출판 동녘을 통해 한국어판이 나오면서부터다. 출간하자마자 금서의 굴레를 뒤집어썼으나, 이와 동시에 80년대 운동권의 필독서가 되면서 지금까지 20만 부를 찍었다. 그런데 비록 미완이기는 했어도 『아리랑』의 초역은 해방기로 거슬러 오른다. 잡지 〈신천지(新天地)〉에 「아리랑- 조선인 반항자의 일대기」라는 제목으로 1946년 10월호부터 1948년 1월호까지 연재된 바 있다.

해방기의 연재 중단, 뒤늦은 완역과 금서 지정은 이념의 족쇄 때문이다. 한데 『아리랑』의 보유(補遺)랄 수 있는 님 웨일즈의 『아리랑 2- 김산의 생애 및 한국에 관한 보충』(학민사 편집실 옮김, 학민사, 1986)에 가해진 압박은 냉전의 유물이?고만 하기엔 부족하다. 그저 서글플 따름이다.

책을 구하지 못한 필자는 이 책을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람하였다. 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아리랑 2』의 표지에는 “관리번호 2062”라는 견출지가 붙어 있고, 표지 안쪽 면에는 이런 문구의 스탬프가 찍혀 있다. “특수자료- 본 자료는 허가없이 공개, 복사, 반출 등을 할 수 없음.”

해방 60주년 광복절을 맞아 동녘은 한국어판 『아리랑』 개정 3판을 발간했다. 이전 판과 눈에 띄는 차이점은 판형이 문고판 형태로 아담해지면서 페이지 수는 늘어나 두꺼워졌다. 엄혹한 시대적 여건 탓에 초판 출간시 ‘조우화’라는 가명을 썼던 번역자가 이름을 되찾기도 했다. 이회성과 미즈노 나오끼가 엮은 『아리랑 그 후 - 김산과 님 웨일즈』(윤해동 외 옮김, 동녘, 1993)는 『아리랑』의 내용 이해를 돕고 풍부하게 하는 참고도서다.

님 웨일즈(Nim Wales, 1907-1997)

님 웨일즈는 필명이다. 그녀의 본명은 헬렌 포스터 스노인데 1932년 에드거 스노와 결혼하면서 이름에 덧붙여진 남편의 성씨를 1949년 이혼한 이후에도 떼지 않았다. 님 웨일즈의 자서전 『중국에 바친 나의 청춘(My China Years)』(한기찬 옮김, 지리산, 1994)에 묘사된 상해(上海)의 초콜릿 가게에서의 운명적인 만남에서 에드거 스노에 대한 그녀의 첫인상은 “대수롭지 않”았다.

“나는 여윈 몸매이긴 하지만 체격이 좋으며 흰옷을 입고 있는 사람을 쳐다보았다. 에드거 스노의 안색은 너무나 창백해서 주근깨가 내비쳐 보일 정도였다. 나는 그가 내 실망한 모습을 알아채지 못하기를 바랐다. 나는 온 세상을 돌아다니는 용감하고 강인하며 튼튼한 여행가를 상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이것이 진정한 여행가가 치러야 하는 대가인지 자문(自問)한다. 이윽고 평정을 되찾은 님 웨일즈는 대수롭지 않은 첫인상을 떨쳐 버리려 애를 쓰면서 스노의 건강한 남성적 자아에 주목한다. “요컨대 그것은 재봉 솜씨라든가 좋은 첫인상을 주려는 것에 의지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것은 언제나 좋은 첫인상을 주고 매력적으로 보이며 호감을 느끼게 하고 싶은 나 자신의 바람보다 훨씬 더 성숙한 것임을 깨달았다.”

자서전에 따르면, 님 웨일즈의 중국 방문은 공적인 성격이 짙었다. “중국에 오게 된 것은 정부의 형편에 의한 것이어서, 나는 이 일을 중시하여 단 1분이라도 낭비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님 웨일즈는 몇 가지 일을 겸업했다. 우선, 그녀는 상해 주재 미국 총영사관의 서기관이었다. “나는 국무성의 외지 근무 서기관 시험에 합격하고 나서, 나의 스페인어, 프랑스어, 이탈리어를 유용하게 쓸 수 있을 해외 외교관직을 구했다.”

님 웨일즈가 상해에서 수행할 또 하나의 업무는 ‘실버 로비’라는 단체에 은본위 화폐제도의 이점에 관한 보고서를 작성해 보내는 것이었다. 당시 중국은 은본위제를 채택하고 있었다. 님 웨일즈의 중국행은 ‘실버 로비’의 로비와 아버지의 후광에 힘입은 것이기도 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당시 미국 대통령 허버트 후버와 대학 동창으로 친분이 있었던 모양이다.

시애틀에 본거지를 둔 스크립스 캔필드 신문연합의 통신원 역할은 님 웨일즈가 맡은 세 번째 임무였다. 그녀의 통신원 업무 범위가 “빈사 상태에 처한 ‘매혹적인 황금의 동양’으로의 여행업계를 소생시키는 일에 관련된 기사를 보내는 것으로 국한돼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또한 그녀는 〈차이나 위클리 리뷰〉의 서평 담당자로 채용되었다. 그리고 에드거 스노와의 첫 만남에서 이런 포부를 펼치기도 했다. “난 베스트셀러를 쓸 거예요. 난 책을 좋아해요. 책을 믿고 있죠.”

한편, 김산과 『아리랑』에 대한 자서전의 언급은 간헐적인데다 이마저 단편적이다. “이 한국인은 모든 것을 다 잃고 말았으면서도, 자기 자신의 ‘영혼’을 획득하고 있었다.” “훗날 나는 어느 한국 공산주의자의 일생을 그린 『아리랑』을 집필했다.” 님 웨일즈가 휴식을 취하기 위해 필리핀에 머무는 동안 집필한 두 권의 책 중 하나가 『아리랑』이다.

님 웨일즈는 20세기 미국의 ‘박제된 진보’ 혹은 ‘은둔의 이단’이라는 측면에서 스콧 니어링을 떠올리게 한다. 스콧 니어링에게 버몬트 주와 메인 주의 농장이 현실의 이상향이었다면, 그녀에겐 코네티컷 주의 매디슨이 그것이었다. 그녀가 스콧 니어링과 같은 마르크스주의자는 아니다.

“마르크스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칼이 아니라 그의 형이었다. 나는 칼 마르크스의 저서를 읽은 적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위험한 사상의 소유자라는 말을 들은 적은 있었다.” 1933년 초, 북경에서 직접 만난 ‘오메가 포인트’ 이론의 프랑스 신부 떼야르 드 샤르댕의 사상에 호감을 보이긴 했으나, 그녀는 독자 노선을 추구했다.

“나는 인류의 진보, 우주 탐험, 발명, 독창성을 지지하는 사람이다. 나는 지식의 경계를 조금이라도 더 개척하는 쪽을 지지하는 사람이며, 나 자신도 그 일을 하려고 노력해왔다. 나는 건강하고 유기적인 삶과 사고, 인간의 이성을 포함한 자연의 균형을 지지한다. 나는 개인의 최대 발전을 지지한다.”

님 웨일즈는 자신의 생각을 ‘공업합작사 운동’을 통해 구현하고자 했다. 1938년 그녀는 남편 에드거 스노, 뉴질랜드인 루이 알레이와 의기투합하여 공업합작사를 창안한다. “‘궁호(工合)’라는 말은 바로 공업합작사의 준말이다. 우리는 ‘인민’, 특히 자기 손을 사용해서 일하는 ‘생산자’라는 개념에서 그러한 착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운동에 대한 과도한 의미 부여는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사실, 외모나 성장 배경을 감안할 때 그녀는 분명히 ‘공주’ 과(科)다. 파이버라는 헐리우드의 사진사는 님 웨일즈의 사진을 자기 사진점에 진열했는데 그 이유는 그녀가 “조앤 베네트와 닮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여제(女帝)를 자칭하기도 했다.

님 웨일즈 역시 스콧 니어링처럼 미국이라는 거대한 틀 안에 갇혔던 걸로 보인다. 적어도 노년의 님 웨일즈의 사고와 태도는 수긍하기 어렵다. 재일 한국인 작가 이회성은 그녀와의 인터뷰에서 이를 잘 지적했다. 이회성에게 미지의 그녀는 그저 ‘경외의 대상’이었지만, 차츰 ‘천착의 대상’으로 바뀌었다.

흑인과 멕시코 이주자의 ‘복지병’에 대한 그녀의 몰이해와 영국적 문화 전통을 정통으로 보는 지향이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과장되게 말하자면 백 년의 사랑이 한 순간에 식어 버리는 듯한 느낌이 나를 휩쓸었다. ‘공합’ 정신과 전혀 다른 이러한 모순을 지닌 스노우 부인의 아픈 이율배반이 슬프게 느껴진 것이다.”

김산(金山, 1905-1938)

김산은 가명이다. 그의 본명은 장지락(張志樂)이다. 『아리랑』에는 고향이 평양 교외의 차산리로 돼 있으나, 실제 출생지는 평안북도 용천군 북중면 하장동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그리고 연안에서 서른 세 해의 불꽃같은 생을 마감했다. 김산의 삶은 실로 파란만장했다. 중국 대륙을 주요 활동 무대로 하여 광둥 코뮌과 하이루펑 소비에트의 현장에 있었다. 두 차례에 걸쳐 체포와 구속을 겪기도 했는데 두 번 모두 증거 불충분으로 방면되었다.

김산은 『아리랑』에서 그의 삶에 깊은 영향을 끼친 인물로 세 사람을 꼽는다.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금강산 승려 출신의 김충창(본명 김성숙)이고, 두 번째가 도산 안창호 선생, 세 번째는 하이루펑 소비에트의 지도자 펑파이(彭湃)다. “안창호는 나에게 실제 정치를 가르쳐 주었고, 김충창은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가르쳐주었으며, 펑파이는 야전에서의 혁명전술을 가르쳐주었다.”

『아리랑』에서 김산은 자신의 애독서 목록과 저자를 밝히고 있는데 잭 런던의 이름이 눈에 띈다. 런던은 그가 늘상 좋아한 작가다. 김산은 런던을 “내가 알고 있는 미국 작가 중 유일하게 보편적 경험이란 형태를 가지고 프롤레타리아적 해석을 제시한 인물”로 본다. 또 런던을 고리끼보다 윗길에 놓는다. “나는 고리끼보다는 런던을 더 좋아한다. 고리끼는 훌륭한 이념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런던처럼 강한 인물도 아니고 강한 작가도 아니다.”

한편, 우리의 처지를 ‘물속에 녹아 있는 소금’에 빗댄 걸 공명하는 대목에선 나라 잃은 백성의 설움과 무상함이 읽힌다.

“우리는 더는 물속에 녹아 있는 소금처럼 우리 자신을 잃어 버릴 처지가 ? 된다. 우리는 쫓겨난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다른 세력에 가담하는 하나의 세력으로서 중국에 가세해야만 한다. 일본제국주의가 매우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장래의 행동을 위하여 조선인의 운동을 건설하고 준비하는 방향으로 재빨리 우리의 정력을 기울여야 한다.”

김산의 삶과 최후를 둘러싼 논란이 분분하다. 먼저 그의 활동 경력에 대한 평가를 보면, 재일 한국인 논픽션 작가 김찬정이 김산의 유가족을 찾아 나섰을 때 만난 조선족 명망가 문정일의 평가는 꽤나 인색하다.

“왜 자네들은 김산에게 흥미를 갖는가? 중국 혁명, 나아가 중국에서의 조선 혁명에 공헌한 조선인은 많이 있네. 그런 사람들에 비춰 보면 김산은 거의 혁명에 공헌하지 않았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야. 우연히 스노우 부인과 알게 되고, 그 이야기가 책으로 출간되어 유명해졌을 뿐인데, 그런 인물을 중국 내 조선인 혁명가들을 대표하는 것처럼 추켜세우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보네.”(『아리랑 그후』에서)

시샘 섞인 폄하로 보이지만 주류적 시각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설령 김산의 업적이 보잘 것 없다 한들 어떠랴! 만주국 일본군 장교를 받드는 이들이 그 장교는 친일파가 아니라 독립투사에 가까웠다고 서슴없이 주장하는 판국에. 어느 원로 문화평론가가 한 강연에서 이육사를 거론하며 육사의 독립운동보다 그가 남긴 몇 편의 시가 더 쓸모가 있다는 투로 얘기했다는 것도 억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김산이 무명 용사이기에 필자는 그가 더욱 존경스럽다. 필자가 중국 혁명가 가운데 등중하(鄧中夏)를 제일 좋아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그 생애는 전소혜(錢小惠)의 등중하 평전 『내 영혼 대륙에 묻어』(백산서당, 1986)에 담겨 있다.

한국 정부가 한참 뒤늦으나마 김산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한 것은 만시지탄이되 다행스러운 일이다. 얼마 전, 라디오 교통정보 방송에 곧잘 나오는 왕산로의 작명 배경을 듣고 감동을 받은 바도 있다. “다만 해방 뒤 정부는 허위의 독립운동을 기려 해방 뒤 동대문에서 청량리에 이르는 길을 왕산로로 이름 붙이고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1호를 추서했다.”(〈한겨레〉2005년 8월 26일자) 또한 유라시아 대륙에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는 왕산 허위 선생의 후손을 추적한 텔레비전 다큐멘터리는 얼마나 감명 깊었던가!

김산의 최후는, 두 번의 체포와 구속에서 쉽게 풀려났다는 점이 중국공산당 핵심의 의심을 사 일제의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연안에서 살해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1983년 누명을 벗고 명예를 회복했지만 김산이 복권되기까지 그의 유족은 적잖은 불이익을 당했다. 그런데 님 웨일즈는 김산의 최후에 관해 다른 견해를 펼쳤다. 숙청보다는 김산이 돌연사 했다는 쪽에 무게를 둔다. 이에 대해 백선기는 님 웨일즈가 김산에 대해 1990년에 쓴 두 편의 글을 토대로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다.

“첫째, 웨일즈는 오랫동안의 중국 생활을 통해 동양인들을 비교적 잘 이해하는 입장에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구인의 시각, 특히 신교도의 입장에서 동양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 이 글 속에 피력된 웨일즈의 생각 속에는 자신에 대한 상당한 자부심과 거기에서 파생되는 독선이 들어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다 “그녀에겐 김산도 중요했지만(사실 김산을 만난 것은 뜻밖의 소득이었다) 장정(長征)의 영웅들이 보다 중요했으며, 특히 모택동과 주은래의 경우, 그녀는 김산에 대한 애정 이상으로 그들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도덕적 이미지를 도저히 훼손할 수 없었던 것이다.”

김산? 님 웨일즈

애초에는 님 웨일즈만 리뷰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나름의 불문율’을 깨면서까지 김산을 함께 다룬 데에는 TV 다큐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광복절 전전 날엔가 재방송을 시청한 ‘KBS 스페셜’ 〈나를 사로잡은 조선인- 혁명가 김산〉(본방송 2005년 7월 30일 오후 8시)가 결정적 요인이었다. 한국방송 웹사이트의 다시 보기를 통해 스쳐 지나간 김산 관련서의 면모를 확인하고, 다큐의 내용이 『아리랑』에 실려 있는 조지 토튼 교수의 ‘해설’에 크게 의존하고 있음도 알았다.

지난 여름, TV 미니 시리즈 〈내 이름은 김삼순〉의 열풍에 힘입어, 드라마에서 비중 있는 소도구로 사용된 미하엘 엔데의 『모모』가 4반세기만에 베스트셀러 종합 순위 1위로 재림하였다. 하면 지난 20년간 20만 부를 찍었다 해서 다시 베스트셀러가 되지 말란 법은 없을 것이다. 『아리랑』의 독서열을 부추기기 위해 공중파 방송에서 다큐를 줄창 틀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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