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당혹스럽고 지루했던 첫 만남 『앵무새 죽이기』

어렸을 때 주로 읽던 책은 만화책과 위인전, 문고판 형식의 세계문학전집이 전부였죠.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어렸을 때 주로 읽던 책은 만화책과 위인전, 문고판 형식의 세계문학전집이 전부였죠.
아버님이 쓰시는 책장에 꽤 많은 책이 꽂혀있었지만, 부모님께서 만들어놓은 팝송모음집을 감상하거나 낙서하는 게 너무 재밌었기에 그 곳에 있는 책은 신경도 쓰지 않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도 오늘부터는 부모님이 가지고 계시는 책을 슬슬 읽기 시작해도 되지 않을까?' 란 생각에 서재에 들어가서는 무얼 읽어볼까 한참 고민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게 책장 앞에 우두커니 서서는 책 제목을 훑기 시작하는데 시선을 확 끄는 제목이 있었으니 그 책이 바로 『앵무새 죽이기』이었습니다.
뭔가 상당히 시니컬한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 어린이용 문고판이나 위인전에서는 볼 수 없는 상당한 두께가 맘에 들었습니다. (사춘기 시절이었기에 야한 내용의 소설이길 바랐던 기억도 살짝 납니다만, 분명 잘못된 기억일 거예요. 정말이에요)

책상의 스탠드를 켜고 첫 페이지를 넘기면서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가던 기분은 참으로 묘했습니다. 꼭 이 한 권의 책을 읽으면 어른이 될 것 같은 기분이랄까요? 제 또래의 친구들은 읽고 있지 않거나 제목조차 들어 본 적 없는 책을 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생겨난 긍지나 자부심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사실 『앵무새 죽이기』란 책의 내용을 전혀 몰랐기에 앞부분에 나오는 래들리 집 앞에서 벌어지는 아이들의 소동에 꽤나 흥분해서는 '우와 이거 왠지 내가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란 생각에 흐뭇해했었습니다만 50페이지를 지나고 100페이지를 넘어가면서는 하품이 잦아졌고, 200페이지를 넘어가면서부터는 이전 페이지에 무슨 이야기가 있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아 읽은 부분을 또 읽고 또 읽기를 반복했습니다. 만약 한 번 읽은 페이지는 조금씩 잉크가 증발해버리면서 책의 인쇄 상태가 옅어진다면 백지가 되어버릴 만큼 반복에 반복을 거듭했죠. 하지만 한 번 넘기기 시작한 책은 꼭 끝까지 봐야한다는 사명감에 300페이지를 넘기고 400페이지를 넘기며 결국은 아주 오랜 시간을 투자한 끝에 마지막 페이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다 읽고 나서는 마라토너가 골인지점에 도착했을 때처럼 많이 피곤하고 힘들었지만 다 읽었다는 만족감은 상당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책 자체는 정말 따분하고 지루했었죠. '어른이 된다는 건 쉬운 게 아니다'란 생각이 들만큼 제가 읽기에는 너무 어렵고 심심했었습니다.

그 당시의 제가 미국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란 맛있는 과자와 초콜릿을 많이 팔고 평균 키가 굉장히 큰 나라랄까요? 인종차별, 사람에 대한 편견, 읽어버린 인권, 진실에 대한 추구 등등 이런 단어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때였으니까요.

뭐 여하튼 최근에 트루먼 카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 번역본을 읽으면서도 '하퍼 리'의 등장에 매우 반가워할 만큼 이제는 좋아하는 소설이 되어버린 『앵무새 죽이기』지만 처음 읽을 때의 그 당혹스러움과 지루함은 잊을 수가 없네요.

그나저나 하퍼 리 씨의 신작은 과연 읽어 볼 수 있기는 한 걸까요?

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저/김욱동 역 | 문예출판사

미국 사회 전체, 나아가 세계가 고민해야 할 문제 '차이'와 '관용'을 다룬 작품으로서 나이 어린 주인공이 온갖 시련과 고통을 겪으면서 정신적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린 대표적인 성장 소설로는 『호밀밭의 파수꾼』이나 『토니오 크뢰거』등을 들 수 있다. 『앵무새 죽이기』 역시 이러한 부류에 속하면서도 나이 어린 '소년'이 아닌 '소녀'를 화자이며 주인공으로 삼고 있는 몇 안되는 작품 중에 하나다.
인종문제보다는 좀더 근본적인 삶의 문제에 초점을 맞춘 완역본.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13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오늘의 책

이토록 매혹적인 외국어 공부

인간은 언어를 구사하는 존재다. 우리가 언어를 배우는 이유는 보다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다. 외국어 공부는 보다 넓은 세계도 보여준다. 『숲속의 자본주의자』 박혜윤, 응용언어학자 김미소 두 저자가 쓴 글을 읽으면 미치도록 외국어 공부가 하고 싶어진다. 영어, 일어 모두.

배우 문가영이 아닌, 사람 문가영의 은밀한 기록

배우 문가영의 첫 산문집. 문가영은 이번 에세이를 통해 ‘파타’라는 새로운 얼굴을 통해 자신의 내밀한 언어들을 선보인다. 자신을 경계인으로 규정하며, 솔직한 생각과 경험을 형태와 시공간을 뛰어넘어 실험적으로 다뤄냈다. 앞으로의 그녀가 더 기대되는 순간들로 가득 차 있는 에세이.

자유롭고 행복한 삶

좋아하는 일을 하며 자유로운 삶에 도달한 68만 유튜브 크리에이터 드로우앤드류의 신간이다. 남에게 보이는 삶을 벗어나 온전한 나의 삶을 위해 해온 노력과 경험을 들려준다. 막막하고 불안한 20-30대에게 자신만의 삶을 방식을 찾아가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사교육의 나라에서 흔들리지 않고 중심잡기

단돈 8만 원으로 자녀를 과학고에 보낸 엄마가 알려주는 사교육을 줄이고 최상위권 성적으로 도약하는 법! 고액의 사교육비와 학원에 의존하는 대신, 아이의 자기주도적인 학습을 위해 부모가 가정에서 어떻게 올바른 학습 환경을 마련하고 노력을 해야하는지에 대해 알려준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