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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와 한국식 공포영화의 한계

강풀의 『아파트』에 보면 남편에게 배신당하고 이혼당한 뒤, 자기 아파트를 떠나지 못하는 은둔자 가정주부 캐릭터가 나옵니다. 바깥세상과 인간관계가 두려워 미치겠지만 그런 자신을 가두는 고립 자체도 고통스러운 사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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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풀의 『아파트』에 보면 남편에게 배신당하고 이혼당한 뒤, 자기 아파트를 떠나지 못하는 은둔자 가정주부 캐릭터가 나옵니다. 바깥세상과 인간관계가 두려워 미치겠지만 그런 자신을 가두는 고립 자체도 고통스러운 사람이죠. 이 사람이 세상 밖으로 탈출하려는 시도는 이 유령 이야기에서 중요한 하나의 축을 구성합니다.

안병기의 <아파트>는 원작을 상당히 많이 손 댄 영화지만 그래도 은둔자 캐릭터는 하나 등장합니다. 이 영화에서는 남자예요. 더 이상은 스포일러가 될 텐데 밝혀도 되려나? 뭐, 상관없겠죠. 영화는 그 남자의 정체를 중반 이후에 밝힙니다. 경찰의 전문가가 <싸이코>의 심리학자처럼 그 사람의 증상에 대해 줄줄 읊는 거죠. 전문용어로 히키코모리라고 하는데 (언제부터 이게 전문용어가 된 거죠?), 외부와 접촉 않고 집에서만 살고 내성적이고 어쩌고저쩌고...

이 정도만 말해도 여러분은 안병기의 개작을 그렇게까지 제가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차렸을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왜냐죠. 왜 전 그 엄청난 관대함과 낙천주의에도 불구하고 강풀의 은둔자 가정주부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안병기의 히키코모리는 무시하는 걸까요?

답은 간단해요. 특별히 내세울 만한 대단한 개성은 없었지만 강풀의 가정주부는 그래도 독립적인 캐릭터였습니다. 일단 인간으로 존재하고 그 다음에 은둔자라는 설정이 따른 거죠. 만화 내내 쏟아지는 독백을 통해 우린 그 사람의 심정과 동기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강풀이 『아파트』의 세계를 떠난 뒤에도 그 가정주부는 조금씩 세상과 접촉하며 살아갔을 것 같아요. 하지만 안병기의 히키코모리 청년은 처음부터 끝까지 설정이고 도구입니다. 우선 트릭을 위한 설정이고 히키코모리라는 사회적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이죠.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외부에서 정의되고 우린 아무리 그가 거창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떠들어도 결코 그의 마음속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이런 태도는 강풀의 성공과 안병기의 실패를 갈라놓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강풀은 이야기를 다루는 데 자유스럽습니다. 심지어 설정해놓은 공포물의 공식에서도 자유롭죠. 물론 그런 자유를 위해 ‘미스터리심리썰렁물’이라는 위악적인 제목을 다는 편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지만요. 가정주부 캐릭터도 어떤 의무감에서 만든 게 아니에요. 그냥 이야기에 어울려서 택한 것이죠. 하지만 안병기에게는 모든 게 의무적입니다. 관객들을 무섭게 만드는 것도 의무이고 그런 공포물을 만들면서 사회적 이슈에 대해 다루는 것도 의무입니다. 히키코모리 청년도 그런 의무의 일부분이죠. 그래서 그 경찰의 전문가가 히키코모리 현상에 대해 줄줄 읊는 거고 도입부 텔레비전 뉴스에 그 현상이 보도되는 거죠. 안병기의 영화에서 모든 인물들이 다 박제된 인형처럼 보이는 것도 당연합니다.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게 전혀 없어요.

슬프게도 이런 ‘의무감’은 우리나라 장르물들을 잠식하고 있습니다. 특히 공포영화에서는 치명적이에요. 보통 땐 조용한 사람들이 왜 갑자기 공포영화를 만들면서 온갖 사회적 이슈에 집착하는 건지? 왜 이 장르가 성형열풍이나 몸짱열풍, 부패한 학교, 계급갈등, 따돌림, 은둔자 현상을 고발해야 하는 건가요? 물론 이 장르가 그런 이야기를 하지 말하는 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하고 싶어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야 하고 그게 이야기와 잘 어울려야죠. 저에겐 이 모든 게 변명처럼 보입니다. “나는 공포영화라는 얄팍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고 있어. 하지만 그걸 보상하기 위해 뭔가 사회적으로 중요한 이슈에 대해 진지하게 다루겠어.” 이건 “난 공포영화라는 얄팍한 장르의 영화를 만들고 있어. 그러니 무조건 무섭기만 한 영화를 만들어야 해”와 비슷하게 나쁜 강박증입니다.

알아요. 장르물을 만들면서 고정 관객들의 기대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마케팅용 허세도 필요하고요. 하지만 그런 걸 다 인정한다고 해도 여전히 진정성과 자유의 문제는 남습니다. 그래서 전 계속 그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거예요. 정말 호러 장르에 관심이 있습니까? 그 영화들을 진심으로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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