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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그들'과 지금의 '우리'

얼마 전에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이두용의 <최후의 증인>을 봤습니다. 곡절이 많은 영화입니다. 1980년에 완성되었지만 검열과 제작사의 가위질 때문에 거의 반 정도 잘려나간 상태로 개봉된 뒤 묻혔다가 얼마 전에 거의 오리지널에 가까운 버전이 공개되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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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이두용의 <최후의 증인>을 봤습니다. 곡절이 많은 영화입니다. 1980년에 완성되었지만 검열과 제작사의 가위질 때문에 거의 반 정도 잘려나간 상태로 개봉된 뒤 묻혔다가 얼마 전에 거의 오리지널에 가까운 버전이 공개되었거든요. 제가 간 상영회에서는 김영진, 류승완, 오승욱, 이두용이 상영회가 끝난 뒤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에너지와 영화에 대한 애정이 철철 넘치는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영화는 어땠느냐고요? 흥미로운 작품이었어요. 제 취향은 절대로 아니었지만 류승완과 오승욱이 열광하는 이유는 알겠더군요. 적어도 두 사람은 이두용이 양질의 액션 영화를 만들던 6,70년대 한국 영화의 뿌리에 어느 정도 닿아있는 사람들이니까요.

여기서 전 한국 영화의 연속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지금의 한국 영화는 흐름이 끊긴 상태죠. 90년대 중반에 거의 완벽하게 물갈이가 이루어졌으니까. 그렇다면 지금의 한국 영화는 그 이전의 한국 영화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 걸까요? <최후의 증인>은 여러모로 봉준호의 <살인의 추억>을 연상시키는 구석이 있습니다. 하지만 봉준호가 이 영화를 삭제판으로라도 봤는지는 알 수 없군요. 아마 비슷한 시기의 실제 사람들에 대한 기술일 가능성이 더 클 겁니다. 물론 과거의 전통이 분명한 영화의 형태를 띠지 않고 막연하게 전달되었을 가능성도 크지요. 제도권이나 시스템 내의 폭력에 대한 한국 영화의 건전치 못한 집착과 같은 것은 꼭 개별 영화를 통하지 않아도 충분히 전달될 수 있습니다. 막연한 문화적 분위기와 전통이라는 것이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 생각나는 것. 간담회가 끝날 무렵 이두용 감독은 진정한 한국인의 이미지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지금의 한국인은 험한 역사를 거치느라 훨씬 무서운 사람들로 변했지만 원래 우리는 영화 속의 황바우가 그런 것처럼 소같이 순박한 사람들이라는 거죠. 감동적인 이야기지만 그래도 머리를 긁적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일단 전 아무리 옛날이라고 해도 이 나라 국민의 대부분이 황바우 같은 사람들이었을 거라고 믿지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받아들인다면 이두용 자신이 완벽하게 묘사한, 치사하고 더러운 무리인 우린 뭔가요? 한국인이 아닌 다른 무엇인가요? 우린 일종의 기형이고 기다리면 그냥 원래의 모습을 찾을 수 있는 걸까요? 아니면 황바우파 토종 한국인들은 문화적으로 그냥 죽은 걸까요?

쓸데없이 말꼬리 물고 늘어지는 짓이니 이 표현을 더 이상 깊이 파지는 않겠습니다. 그래도 궁금한 건 어쩔 수 없죠.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시대나 고려시대, 삼국시대나 그 이전 시대로 거슬러 가면 과연 우린 우리처럼 행동하고 우리처럼 생각하는 사람들과 마주칠까요? 그렇지는 않겠죠. 그동안 문화도 변하고 행동 방식도 변했으니까요. 물론 그동안 거의 변하지 않은 부분도 있겠지만…. 그래도 중간을 딱 떼어내고 두 시대를 비교 관찰해 보면 분명한 불연속면이 눈에 들어올 겁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이 우리여야 합니까? 물론 당시 사람들이 우리를 본다면 결코 우릴 그들의 일부로 인정하지 않겠지요. 우리가 삼국시대 사람들을 우리의 일부로 인정하는 건 우리가 그들의 역사와 땅의 일부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혈통은… 그게 그렇게 큰 의미가 없다는 건 여러분도 생물시간에 배워서 다 아실 거고. 하여간 이렇게 본다면 문화적 흐름이란 하나의 집단 안에서 보존되는 게 아니라 다른 생각과 다른 의견, 심지어 다른 육체와 혈통을 가진 사람들에게 전달되어 유지되는 것입니다.

이번 주부터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이만희 전작전을 합니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이만희의 모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멋진 기회입니다. 쉽게 볼 수 없는 영화도 많고 초대 게스트도 빵빵하니 한 번 가보시길. 그리고 영화를 보시면서 한 번 생각해보시길. 이 옛날 영화들이 우리와 어떤 연속선상에서 연결되어 있는지, 우리가 물려받은 이 유산을 어떻게 유지하고 있는지, 우리가 이 영화들과 우리 사이에서 불연속성을 느낀다면 그것이 우리의 잘못인지. 과연 이만희의 영화들이 얼마만큼 ‘우리’의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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