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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지 영화상이 따분해지는 이유

슬슬 래지상이 따분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 영화상의 야유엔 적극적이고 날카로운 풍자가 부족합니다. 큰 놈을 골라 당당하게 싸우는 대신 남들이 다 놀려대는 대상을 찾아 그 놀림을 인정해주는 것에 불과하니까요. 한마디로 왕따 농담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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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지 영화상이라는 게 있습니다. 아카데미 전날에 그 해 최악의 영화를 뽑는 농담 같은 행사죠. 올해는 제니 매카시가 북치고 장구치고 해서 만든 영화인 <더티 러브>가 최악의 작품상을 포함한 수많은 상을 휩쓸었고, 로브 슈나이더, 제니 매카시, 유진 레비, 패리스 힐튼이 최악의 연기상을 받았습니다.

물론 이 영화상은 농담입니다. 어느 누구도 여기에 대해 아카데미상 만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일단 상은 상이고 이 영화상에 후보로 올랐거나 수상을 했다는 사실이 당사자의 경력에 끼치는 영향도 상당하니만큼, 여기에 대해 하나씩 따져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일 것입니다.

일단 하나의 문제가 제기됩니다. 과연 최악의 영화를 뽑는 행사가 가능할까? <더티 러브>가 과연 그 해에 나온 최악의 영화일까? 그건 당연히 아니라는 것입니다. 적어도 <더티 러브>는 영화로서 모양은 갖추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엔 그것도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은 영화들이 넘쳐납니다. 아마 대학 영화제에 가서 쭈그리고 앉아 있어도 <더티 러브>보다 못한 영화들은 넘쳐날 겁니다. 그렇다면 기준은 다소 불안해집니다. 래지가 뽑는 영화는 최악이 아닙니다. 할리우드와 대중의 시야에 들어온 영화들 중 최악이죠.

이 정도는 봐줄 수 있습니다. 래지가 패러디하는 행사인 아카데미상도 그 해 최고의 미국 영화를 뽑는 행사는 아닌 걸요. 그냥 그 해에 만들어진 영화들 중 가장 평판 좋은 할리우드 영화를 뽑는 거죠. 어떤 영화상이건 적당히 선을 긋는 게 필요하고 래지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어간다면 우린 고민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올해 여우조연상은 패리스 힐튼이 받았습니다. 과연 이 사람이 연기를 못 해서 받은 걸까요? 여러분은 당연히 그럴 거라고 생각하시겠죠. 하지만 힐튼이 상을 받은 <하우스 오브 왁스>를 한 번 보세요. 힐튼은 그렇게까지 연기를 못하지는 않습니다. 대사를 씹지도 않고 엉뚱한 감정을 표출하지도 않으며 과하지도 박하지도 않습니다. 물론 연기할 거리가 없긴 해요. 슬래셔 무비에서 살해당하는 골빈 금발이니까요. 하지만 과연 힐튼이 다른 골빈 금발보다 특별히 연기를 못 했을까요? 그건 아니란 말입니다. 힐튼이 오른 건 순전히 그 사람의 이미지 탓입니다. 사람들은 힐튼이 그 영화로 잉그리드 버그먼 수준의 연기를 보여주었어도 여전히 후보에 올렸을 거예요.

올해 남우조연상에 후보로 오른 톰 크루즈는? 솔직해집시다. <우주전쟁>에서 그가 보여준 연기는 상당히 좋았어요. 제가 보기엔 그의 히트작이었던 <제리 맥과이어> 때보다 더 나은 것 같습니다. 그가 이 영화로 후보에 오른 건 그가 나쁜 연기를 보여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영화 홍보를 해야 할 시간에 사이온톨로지에 대해 온갖 헛소리를 해대고 오프라 쇼에 나와 약 먹은 침팬지처럼 날뛰며 남아도는 사악한 포스로 오프라를 죽이려 했기 때문입니다.

슬슬 래지상이 따분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 영화상의 야유엔 적극적이고 날카로운 풍자가 부족합니다. 큰 놈을 골라 당당하게 싸우는 대신 남들이 다 놀려대는 대상을 찾아 그 놀림을 인정해주는 것에 불과하니까요. 한마디로 왕따 농담인 것입니다.

이런 농담들의 무의미함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유익한 일입니다. 여러분과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있고 여러분이 지옥에서 튀어나온 원숭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에게 퍼부어지는 왕따 공격은 어떨까요? 여러분은 쉽게 그 농담에 빠져 들고 그걸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의 풍자적 힘은 어떨까요? 정치적 힘은요? 아마 여러분들 중 상당수는 부시 주니어를 가지고 노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 뻔해 진부해지기까지 한 그의 희화화가 세상을 바꾸긴 했나요? 오히려 그의 바보스러움에 매달리는 동안 더 큰 문제를 놓치고 있지 않을까요? 개인의 희화화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개인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의 한계가 있는 것처럼요. 만약 그 희화화가 여러분 자신이거나 여러분의 믿음을 건드리는 것이라면? 얼마 전 <사우스 파크>의 알렉스 헤이즈가 사이온톨로지를 모욕하는 시리즈의 내용 때문에 그 프로그램에서 떠난 사건은 어떻습니까? 헤이즈의 선언은 그 동안 그가 참여했던 유태교, 이슬람교, 기독교에 대한 농담들을 정당화 할 수 있는 것일까요? 그가 그런 농담을 양심상 허용했던 건 단지 집단 속에서 그들을 놀려대기가 쉬웠기 때문이 아닐까요? 대중의 분위기에 따라 우르르 몰려다니느라 농담의 힘과 권력을 보지 못한다면 과연 좋은 농담꾼이 될 수 있을까요?

*[편집자 주]사이온톨로지 : 영화 <배틀 필드>의 원작자이자 SF작가인 론 허버드가 1954년 미국에서 창설한 종교. 윤회설과 과학기술을 이용한 정신치료를 강조한다. 톰 크루즈, 존 트래볼타가 독실한 사이언톨로지 교도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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