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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쿼터 사수 운동은 늘 모 아니면 도?

지금의 스크린 쿼터 사수 운동은 여러 면에서 그냥 박자가 맞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모든 건 지금까지 생각을 게을리 하고 무조건 감정적인 도박에 의지한 사람들의 자업자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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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스크린 쿼터에 대해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제 입장이 워낙 어정쩡한 편이라 일단 거절했는데, 나중에 돌이켜보니 그럴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스크린 쿼터의 축소에 대한 지금의 논란이 이전과 달리 분노 대신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건 상황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스크린 쿼터가 정말로 축소된다고 해도 ‘지금 당장’ 한국 영화가 치명적인 영향을 받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워싱턴에 압력을 넣은 MPA(미국영화협회)의 희망대로 할리우드 영화의 비중이 갑자기 높아지지는 않을 거라는 거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대충 이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에라, 줄여라. 나는 모르겠다” 또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데, 왜 없애라는 거야?” 이미 오래 전에 자국 영화의 점유율이 50퍼센트를 넘은 상황에서 이전처럼 국민의 공분을 끌어내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아무리 이준기나 강혜정 그리고 또 누구냐… 맞아, 장동건을 내세워 1인 시위를 해도 충분한 설득력은 생기지 않습니다. 디카로 스타 직찍 사진 찍고 달아나는 팬들만 신날뿐이죠. 과연 그 사람들 중 스크린 쿼터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한마디로 말해 지금 한국 영화의 성공은 스크린 쿼터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지금 관객들이 한국 영화를 찾는 건 한마디로 지금의 영화판이 관객들의 취향과 기대에 맞는 상품들을 내놓을 만한 감각과 능력이 있는 사람들도 대체되었기 때문이죠. 90년대 말에 거의 모호로비치치 불연속면에 비결될 만한 급작스러운 세대교체가 이루어진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건 무자비한 대학살이기도 했지만 업계의 체질 개선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한국 영화계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기름칠한 기계처럼 잘 돌아가고 있느냐…. 물론 그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문제는 여기에 있어요. 스크린 쿼터제 축소는 지금의 한국 영화계가 안고 있는 여러 모순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작은 문제입니다. 배급사의 횡포, 터무니없는 박봉에 고생하는 스태프의 문제는 직접적이고 피부에 와 닿는 진짜 문제입니다. 하지만 스크린 쿼터는 몇 년째 직접적인 영향력과는 무관한 상징적인 존재에 불과했죠.

역사의 보편성에 호소하자니, 그것도 생각보다는 쉽지 않습니다. 60년대 한국 영화의 전성기는 어땠던가요? 기억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는데, 그땐 미국 직배 영화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졌고 스크린 쿼터제도 없었습니다. 물론 자국 문화 보호의 장벽이 사라지자마자 업계가 모래성처럼 무너진 경우의 예도 쉽게 들 수 있지만, 대부분 역사의 예란 자의적입니다.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몇 분만 구글링 해도 양쪽 모두의 입장을 옹호하는 예를 모두 얻으실 수 있을 거예요.

제 어정쩡한 입장이 어떤 거냐고요? “스크린 쿼터제가 축소되어도 특별히 달라질 건 없는데 왜 자꾸 귀찮게 이러는 거야?” 정도입니다. 물론 전 이 제도의 축소가 업계에 끼칠 영향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이건 그냥 게으른 낙천주의에 불과해요. 하지만 확신하지 못하는 건 옹호자나 반대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래의 예측이 단순하지 않다면, 필요한 건 감정과 애국심에 호소하는 데모와 선언이 아니라 논리와 이성에 바탕을 둔 토론과 논쟁입니다. 그게 더 옳기 때문이 아니라 더 적절한 도구이기 때문이죠. 분노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 대중의 애국심을 쿡쿡 찔러봐야 뭐가 나오겠습니까….

지난 십여 년 동안 전개된 스크린 쿼터 사수 운동에 제가 가장 불만인 것도 그런 이성적인 무기의 개발을 처음부터 차단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물론 스크린 쿼터 사수 운동은 기본적인 논리와 당위성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거야 모든 운동들이 그렇죠. 그런 것들을 갖추고 있다고 해서 “그 논리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 것인가, 그 방법론이 지금이나 앞으로 닥칠 상황에서 최선의 것인가, 만약 대안을 찾는다면 그것이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까지 갖추고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스크린 쿼터 사수 운동은 늘 모 아니면 도였습니다.

대중이 스크린 쿼터에 냉담해진 지금은 어떻게 보면 대안을 찾고 논리를 재검토할 좋은 기회일 수 있습니다. 직접적인 위협이 닥치지 않았던 몇 년 전이었다면 더 좋은 기회였을 거고요. 지금의 스크린 쿼터 사수 운동은 여러 면에서 그냥 박자가 맞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모든 건 지금까지 생각을 게을리 하고 무조건 감정적인 도박에 의지한 사람들의 자업자득입니다. 국외인인 저로서는 그 피해가 크지 않길 바랄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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