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국영수 위주로 공부해!

한 마디로 둘 다 국영수 공부를 안 했습니다. 조금만 했더라도 그들이 다루는 이야기나 설정이 엄청나게 따분하고 규격화된 것이니 그냥 이야기를 그대로 끌고 가는 대신 노력과 아이디어를 조금 더 투여해야 한다는 걸 알았을 거예요.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몇 주 동안, 전 <썬데이 서울>이니 <흡혈형사 나도열>이니 하는 최근 한국 영화 개봉작들에 대한 굉장히 따분한 리뷰들을 썼습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요. 반성하고 있습니다. 정말 재미없는 글들이었어요. 그렇다고 그 글들의 논지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냥 재미없고 같은 소리가 끝없이 반복되는 글들이었을 뿐이죠.

제 게으름은 인정하지만 전적으로 제 탓은 아닙니다. 세상엔 흥미로운 리뷰들을 끌어내는 영화들이 존재합니다. 그게 꼭 영화의 질과 일치하는 건 아니죠. 형편없는 영화지만 흥미로운 토론의 불을 지피는 영화도 있고 잘 만든 작품이지만 정작 그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재미없는 영화도 있습니다. 물론 영화를 보고 글 쓰는 사람들의 취향이나 의견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겠죠.

본론으로 돌아가서…, 왜 제가 쓴 <썬데이 서울><흡혈형사 나도열>의 리뷰들이 재미 하나 없는 지루한 글들이었을까요? 일단 제 최근 컨디션이 그렇게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죠. 사실이에요. 아마 십중팔구 이런 상태로 2월을 넘길 겁니다. 가끔 있는 일이라 잘 알죠. 하지만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습니다. 이 두 영화들은 모두 했던 이야기를 또 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어요. 이런 영화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건, 성적 문제로 상담 교사를 찾은 학생에게 “국영수 위주로 공부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맞는 말이죠. 하지만 수백 명쯤 되는 학생들을 상담하며 모두에게 “국영수 위주로 공부해”를 반복하다보면 정말 지치게 됩니다. 처음 며칠은 열의가 남아 있을지 몰라도 그게 언제까지 가지는 않죠. 세상엔 반복되는 자명한 말처럼 따분한 소리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걸 거부하는 반항아들이 쿨하게 보이는 거죠. 사실 그런다고 특별히 쿨할 것도 없지만요. 반항아들의 패턴은 모범생들의 행동만큼이나 규격화되어 있거든요.

하지만 “국영수 위주로 공부해” 외에 다른 무슨 말이 필요할까요? <썬데이 서울><흡혈형사 나도열>은 모두 간신히 기본기만 하는 성의 없는 영화들이었습니다. <썬데이 서울>은 남들이 몇 백 번 정도 다 해본, 별 것 아닌 따분한 아이디어 몇 개를 마치 굉장히 독창적인 무언가로 착각하는 영화였고 <흡혈형사 나도열>은 남들이 다 하는 두 장르의 결합을 마치 엄청난 것인 양 착각하는 영화였지요. 한 마디로 둘 다 국영수 공부를 안 했습니다. 조금만 했더라도 그들이 다루는 이야기나 설정이 엄청나게 따분하고 규격화된 것이니 그냥 이야기를 그대로 끌고 가는 대신 노력과 아이디어를 조금 더 투여해야 한다는 걸 알았을 거예요.

“너 자신을 알라”고 소크라테스가 말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명언’들이 그렇듯, 이 간단한 말도 맥락 속에서 읽어야 제대로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거지만, 전 그냥 그대로 인용하렵니다. 쓸 만한 말이에요. 특히 머리 쓰기 싫어하는 장르 영화 제작자들을 비판하는 데엔 말이죠. 장르는 만만한 게 아니에요. 수천, 수만의 선배들이 이미 온갖 길들을 다 실험해 본 동네에서 살아남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인 것 같습니까? 왜 다들 이런 작업을 건성으로 생각하는 걸까요? 전 영화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건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영화들을 만들면서 뭔가 대단한 시도라도 한 것처럼 착각하고 우쭐거리는 감독들을 계속 보고 싶지는 않아요. 겸손을 배우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런 거만함에 맞는 내용을 담으라는 거죠. 그러기 위해 천재가 될 필요는 없어요. 그냥 꾸준히 성실하게 공부만 해도 됩니다. 그 쪽도 장르의 벽을 뛰어넘는 걸작을 만드는 게 목적이 아니잖아요.

그러나 누가 이 말을 신경 써서 들을까요. 아무도 안 들을 겁니다. 결국 지금까지 쓴 간청도 “국영수 위주로 공부해”의 또 다른 변주에 불과하거든요. 저라도 한 귀로 흘리고 잊어버릴 겁니다. 그리고 또 악순환이 반복되는 거죠. 빙글 빙글 빙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5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오늘의 책

수학 좋아하는 아이로 키우는 엄마표 유아수학 공부

국내 최대 유아수학 커뮤니티 '달콤수학 프로젝트'를 이끄는 꿀쌤의 첫 책! '보고 만지는 경험'과 '엄마의 발문'을 통해 체계적인 유아수학 로드맵을 제시한다. 집에서 할 수 있는 쉽고 재미있는 수학 활동을 따라하다보면 어느새 우리 아이도 '수학을 좋아하는 아이'로 자랄 것이다.

나를 바꾸는 사소함의 힘

멈추면 뒤처질 것 같고 열심히 살아도 제자리인 시대. 불안과 번아웃이 일상인 이들에게 사소한 습관으로 회복하는 21가지 방법을 담았다. 100미터 구간을 2-3분 이내로 걷는 마이크로 산책부터 하루 한 장 필사, 독서 등 간단한 습관으로 조금씩 변화하는 내 모습을 느끼시길.

지금이 바로, 경제 교육 골든타임

80만 독자들이 선택한 『돈의 속성』이 어린이들을 위한 경제 금융 동화로 돌아왔다. 돈의 기본적인 ‘쓰임’과 ‘역할’부터 책상 서랍 정리하기, 용돈 기입장 쓰기까지, 어린이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로 자연스럽게 올바른 경제관념을 키울 수 있다.

삶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야

저마다 삶의 궤적이 조금씩 다르지만 인간은 비슷한 생애 주기를 거친다. 미숙한 유아동기와 질풍노동의 청년기를 거쳐 누군가를 열렬하게 사랑하고 늙어간다. 이를 관장하는 건 호르몬. 이 책은 시기별 중요한 호르몬을 설명하고 비만과 우울, 노화에 맞서는 법도 함께 공개한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