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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들이 여성을 제대로 다루고 있나요?

최근 한국 여성 주도 호러 영화들의 부흥은 그 자체론 대단한 의미가 없습니다. 이 장르의 최근 실패작들은 따지고 보면 이런 영화들을 만드는 사람들이 수요자들과 대상들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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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나온 한국 호러 영화들의 주인공들은 모두 여성입니다. 주인공이 여성일 뿐만 아니라 주제나 내용이 모두 여성적이지요. 천편일률적이라고 말하신다면 그건 맞습니다. 하지만 전 아직까지 여기에 대해 모질게 비판하고 싶지는 않군요. 여성 캐릭터 주도의 영화들이 굉장히 적은 한국 영화계에서 이런 호러 영화들은 기회와 대안이 되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아직 이런 유행은 80년대 미국 슬래셔 영화 유행처럼 오래 끌지도 않았습니다. 조금 더 두고 봐도 나쁠 건 없다는 거죠.

오늘은 다른 이야기를 해보기로 하겠습니다. 여성 주도의 영화가 나오는 건 좋습니다. 하지만 과연 이 영화들이 얼마나 그들을 제대로 다루고 있을까요?

생각만큼 쉽게 따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만약 여러분이 70년대 페미니스트라고 한다면 대상이 되는 작품이나 작가의 편견이나 무감각함, 무지함을 공격하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정말 먹혔지요. 하지만 지금 영화판에 나와 여성주도의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기초적인 페미니즘의 개념에 대해 인식하고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비판은 조금 더 복잡해질 필요가 있지요.

<분홍신><여고괴담 4-목소리>의 예를 들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두 편의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들의 관계는 결코 이상적이지 않습니다. 탐욕에 눈이 멀어 구두를 두고 싸우는 모녀가 등장하고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주변의 친구들과 선생을 희생시키는 여자 고등학생이 등장하죠. 이 영화들이 70년대에 등장했다면 비슷한 영화들과 묶어서 진부함과 편견을 공격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조금 다릅니다. <분홍신>만 해도 김용균 감독이 여성 캐릭터들이 기초적인 페미니즘의 시선을 통해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의도적으로 부정적인 편견을 과장할 생각도 없고요. 작가들과 감독의 입장만 따진다면 이 영화는 오히려 중립적이거나 프로 페미니즘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단순히 하나의 고정된 설정을 다루었다는 것만으로 이들을 기계적으로 비판하는 건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두 영화는 여전히 갈립니다. 전 <목소리>가 용케 시험에 통과하는 동안 <분홍신>은 문 앞에서 좌절했다고 말하겠습니다. 왜? 결국 그건 대상에 대한 이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분홍신>에는 두 가지 주제가 존재합니다. 현대 한국 커리어 우먼의 복잡한 심리묘사와 귀신들린 물건을 다룬 탐욕의 이야기죠. 영화는 이 둘을 하나로 묶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감독이 탐욕 이야기에서 모델이 자신이라고 주장해도 이들은 아귀가 맞지 않습니다. 만약 감독이 그 캐릭터를 제대로 이해했다면 이 어색한 조합을 밀어붙이지 않았을 겁니다. 주제를 탐구할 수 있는 제대로 된 길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김용균은 그렇게 했습니다. 슬픈 일입니다. <와니와 준하>의 감독에게서 전 그 이상을 기대했습니다.

<여고괴담 4-목소리>는 거기에서 벗어났습니다. 그건 최익환 감독이 특별히 여성의 심리 묘사에 예민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다루는 캐릭터를 타자화시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 속에서 여성 캐릭터들이 하는 행동들은 페미니스트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긍정적이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편견으로 간단하게 밀어붙이기엔 동기와 논리가 잘 서 있습니다. 그렇다면 관객들이 그걸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 이유는 전혀 없는 거죠. 이건 정말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여기서 전 제가 불편해하는 용어를 하나 꺼내 보이기로 하겠습니다. 그건 바로 ‘여성 심리 묘사’나 ‘남성 심리 묘사’라는 것입니다. 둘은 사실 충분한 존재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여자들의 행동과 남자들의 행동은 분명 다릅니다. 사회적 환경도 다르고 육체도 다르지요.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여성 심리 묘사’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들은 현실적인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아닙니다. 그들이 사전에 규정해 놓은 여성적 이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위대한 작가들이 탐구하는 것은 그 인공적인 차이점이 아니라 인간 고유의 보편성입니다. 플로베르나 에밀리 브론테가 ‘보바리 부인은 나다!’, ‘히스클리프는 나다!’라고 외쳤다고 해서 그들이 모두 트랜스잰더라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트랜스잰더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이번 시즌 영화들에 대해 언급할 때 <가발>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동성애 묘사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영화에는 남성 동성애자 캐릭터 한 사람이 중요한 비중으로 등장합니다. 거기까지는 괜찮습니다. 문제는 작가와 감독이 이런 위치에 놓인 캐릭터의 심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전 그들이 기초 분류나 제대로 하고 있는지도 확신하지 못하겠습니다. 물론 그 경계가 그렇게까지 뚜렷하지는 않습니다만. 이 역시 보편성에 호소하면 해결되는 문제였을까요? 아뇨, 그것도 필요했겠지만 그래도 기초지식은 갖추고 있는 게 좋았을 겁니다.

그래도 <목소리><가발>은 성공한 영화였습니다. <분홍신>의 성과도 나쁘지는 않고요. 진짜 문제점은 <첼로>와 같은 영화에서 발견됩니다. <분홍신>은 심리묘사를 반쯤 시도는 했습니다. 하지만 <첼로>의 경우는 있는 기성품을 그대로 썼습니다. <여고괴담> 시리즈도 뻔하다고 안 쓴 가장 고루한 <여고괴담> 갈등을 그냥 가져와 내놓은 것이죠. 그리고 그건 참담했던 2004년 호러 영화들이 공유했던 문제점이기도 했습니다.

최근 한국 여성 주도 호러 영화들의 부흥은 그 자체론 대단한 의미가 없습니다. 모두 존재하는 수요를 맞추어 내기 위한 작품들이죠. 이 장르의 최근 실패작들은 따지고 보면 이런 영화들을 만드는 사람들이 수요자들과 대상들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이라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좋은 일은 아니죠. 하지만 기회는 여전히 기회입니다. 그 기회를 어떻게 살리느냐는 또 다른 문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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