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댄서의 순정'이 실패한 이유

전 종종 일급의 예술 감독들이 만든 무성의한 장르 영화들에 대해 리뷰를 쓰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장르를 얕보지 말란 말이야!” 장르 영화들은 대충 만들어 통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선배들을 넘어서는 노력이 필요하죠.

  • 페이스북
  • 트위터
  • 복사

구성주의 <엄마>와 박영훈의 <댄서의 순정>은 흥미로운 점 하나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건 이 두 영화들이 무척 촌스럽고 투박한 구닥다리 멜로드라마라는 것이죠. 이게 왜 흥미롭냐고요? 세 가지 이유에서입니다. 첫째, 구성주나 박영훈의 전작들은 모두 이런 식의 순진무구한 촌스러움과는 무관한 작품들이었습니다. 구성주의 <그는 나에게 지타를 아느냐 물었다>는 하일지의 소설을 각색한 ‘아트 하우스’ 영화였고 박영훈의 <중독>은 미스터리와 로맨스가 반반씩 섞인 비교적 날씬한 장르물이었습니다. 완성도를 떠나, 촌스러움과 별로 상관없는 영화들이었죠. 둘째, 두 영화 모두 완성도가 그냥 그랬다는 것입니다. 고두심과 문근영이라는 성실한 스타들의 활약이 없었다면 과연 본전치기라도 가능했을는지? 셋째, 시사회나 인터뷰에서 배우들이나 스탭들의 인사(또는 변명)이 다 이렇게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영화는 결코 세련되게 잘 만든 영화는 아니지만...”

여기서 우린 ‘촌스러움’과 ‘투박함’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이것들은 도대체 뭡니까? 테크닉과 실력의 부족으로 어쩔 수 없이 만들어지는 완성도나 세련됨의 결여입니까? 아마 그렇게도 평가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왜 <엄마><댄서의 순정>을 만든 사람들은 ‘의도적으로’ 그런 투박함에 접근했던 것일까요? 암만 봐도 이건 그네들의 체질이 아닌데 말입니다. 그게 이야기에 더 어울려서? 아니면 예술적 노력을 덜 투여해도 관객들로부터 괜찮은 호응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에? 아마 둘 다겠지요. 그리고 이 두 영화들이 예술적으로 실패한 건 두 번째 이유가 조금 더 큰 역할을 했을 겁니다.

사람들은 투박한 작품들에 대해 종종 심한 착각을 합니다. 이건 아프리카의 이름 모를 장인들이 만든 토착 예술품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무심코 “이런 건 우리 집 애들도 만든다”라고 내뱉는 것과 같은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지요. 이들은 기술적으로 단순해서 만들기 쉬워 보입니다. 따라서 별 게 아니라는 거죠. 하지만 세련된 기술과 예술적 성취가 늘 같은 길을 가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투박한 작품들에서 진짜 장인과 예술가의 실력이 드러나는 법이죠. 테크닉 속에 숨을 수가 없으니까요.

<엄마> <댄서의 순정>은 모두 21세기 초의 한국 영화보다는 60년대 충무로 영화에 더 가깝습니다. 황정순이나 김지미가 나오는 그 옛날 영화들요. 아마 지금 이 영화들에 진지하게 반응하는 젊은 관객들은 얼마 없을 겁니다. 즐기긴 하겠지만 진지한 영화보다는 <로키 호러 픽쳐쇼>처럼 캠피한 오락으로 받아들이겠죠. 그러나 우스꽝스러운 성우 더빙과 과장된 멜로드라마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들은 결코 쉽게 얕잡아볼 수 없는 작품들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적어도 성공작들은 당시 관객들의 심금을 울리기 위해 아주 정교하게 통제된 작품들이었습니다. 우리에게 덜 세련되어 보이는 건 그들이 그런 기술을 습득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지향점이 달랐기 때문이죠.

여기서 <엄마><댄서의 순정>이 왜 실패했는지 드러납니다. 이들의 논리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옛날 영화들처럼 인간미 넘치는 멜로드라마를 만들자. 그러기 위해 일부러 적당히 완성도를 떨어뜨리고 촌스럽게 만들자. 제가 상상하는 게 아닙니다. 실제로 <댄서의 순정>을 만드는 사람들은 그 형편없는 CG 반딧불이가 예술적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근영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 픽셀들을 바라보면 아무리 형편없어도 대충 먹힐 거라고 생각하고 그냥 밀어붙인 거죠. 먹혔냐고요? 문근영은 예뻤습니다. 하지만 CG 반디불이들과 멜로드라마는 여전히 시시했어요.

전 종종 일급의 예술 감독들이 만든 무성의한 장르 영화들에 대해 리뷰를 쓰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장르를 얕보지 말란 말이야!” 장르 영화들은 대충 만들어 통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선배들을 넘어서는 노력이 필요하죠. 오늘 우리가 언급한 두 편의 멜로드라마도 마찬가지입니다. 멜로드라마는 수명이 길고 관객층도 넓은 장르입니다. 이미 온갖 테크닉이 개발되었고 관객들 역시 그걸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보통 때 노력의 서너 배를 투여해도 모자랄 판인데, 이 사람들은 더 어울리는 어법을 찾는답시고 일부러 완성도를 떨어트리고 있단 말입니다. 이런 상업 영화들을 보면 전 그냥 고함치고 싶습니다. “잘 할 줄 모르면 처음부터 하지 말란 말이야!”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 SNS 버튼을 눌러 추천해주세요.

독자 리뷰

(14개)

  • 독자 의견 이벤트

채널예스 독자 리뷰 혜택 안내

닫기

부분 인원 혜택 (YES포인트)
댓글왕 1 30,000원
우수 댓글상 11 10,000원
노력상 12 5,000원
 등록
더보기

오늘의 책

사람을 남기는 독서와 인생 이야기

손웅정 감독이 15년간 써온 독서 노트를 바탕으로 김민정 시인과 진행한 인터뷰를 묶은 책이다. 독서를 통해 습득한 저자의 통찰을 기본, 가정, 노후, 품격 등 열세 가지 키워드로 담아냈다. 강인하지만 유연하게 평생을 치열하게 살아온 손웅정 감독의 인생 수업을 만나보자.

쉿, 우리만 아는 한능검 합격의 비밀

한국사 하면 누구? 700만 수강생이 선택한 큰별쌤 최태성의 첫 학습만화 시리즈. 재미있게 만화만 읽었을 뿐인데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문제가 저절로 풀리는 마법! 지금 최태성 쌤과 함께 전설의 검 ‘한능검’도 찾고, 한능검 시험도 합격하자! 초판 한정 한능검 합격 마스터팩도 놓치지 마시길.

버핏의 투자 철학을 엿보다

망해가던 섬유공장 버크셔 해서웨이가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거듭난 과정을 보여준다. 버크셔의 탄생부터 버핏의 투자와 인수 및 확장 과정을 '숫자'에 집중한 자본 배분의 역사로 전한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의 진면목을 생생하게 담아 가치 투자자라면 꼭 봐야 할 필독서다.

뇌를 알면 삶이 편해진다

스트레스로 업무와 관계가 힘들다. 불안 때문에 잠이 오지 않는다. 그냥 술이나 마시고 싶다. 이런 현대인을 위한 필독서. 뇌과학에 기반해 스트레스 관리, 우울과 불안으로부터 벗어나기, 수면과 식습관에 관해 알려준다. 처음부터 안 읽어도 된다. 어떤 장을 펼치든, 삶이 편해진다.


문화지원프로젝트
PYCHYESWEB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