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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교류는 총 안든 외교전이 아닙니다

예술가와 향유자의 관계는 결국 개인간의 교류라는 것 말입니다. 여기에서 국가나 문화가 무시되어서도 안 되겠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걸 무시하고 이 세계를 점수 따는 올림픽이나 총 안든 외교전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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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한류 열풍이나 몇몇 한국 영화의 국제적 성공에 흥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런 경험이 우리에게 굉장히 낯설기 때문입니다. 한국이라는 나라의 국제적 지명도는 지금도 결코 큰 편은 아닙니다. 한류 열풍이야 아시아라는 제한된 영역에서만 불고 있을 뿐이고 국제적으로 성공한 한국 영화들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열성 영화팬들 뿐이죠. 그래도 우리가 만든 무언가를 남들이 알아주고 좋아해주고 심지어 열광해주고 있다니 신기하기 그지없습니다. 안도의 한숨도 나옵니다. 우리가 드디어 다른 사람들 눈에도 보인다는 걸 드디어 알았으니까요.

우린 지난 몇 백 년 동안 투명국가에 살았습니다. 세계사의 초점을 어디에 잡아도 한국이 끼어들 구석은 많지 않습니다. 그나마 중요했던 건 한국전쟁인데, 전쟁이란 그렇게 자랑할 만한 게 아니고 또 거기서 우리 자신의 역할도 그렇게 컸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관광국으로서 한국은 아시아 주변국들에 비하면 여전히 빈약합니다. 문화적으로도 우린 제대로 된 국제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적 없습니다. 클래식 음악계의 영역을 제외하면 우리에겐 세계적으로 유명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예술가들이 거의 없습니다. 지금 한국 영화들이 어느 정도 국제적 인지도를 얻고 있지만, 그들은 거의 부모 없이 자라난 고아 세대처럼 보입니다. 만약 어떤 예의바르고 한국 영화사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해외 평론가가 『장화, 홍련』이나 『여고괴담』과 같은 한국 호러 히트작들을 선배들인 김기영이나 이만희의 영화들과 연결시켜 고찰한다면 우린 오히려 당황할 겁니다. 만든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일 것 같군요.

투명하다는 것과 텅 빈 건 같지 않습니다. 우리에겐 우리가 수천 년 동안 쌓아올린 문화적 자산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 동안 먹고 자기만 했던 게 아니라는 건 우리 자신이 잘 압니다. 하지만 왜 남들에겐 그런 게 안 보이는 걸까? 도대체 왜? 우리가 조용한 아침의 나라의 은자들이어서?

제가 기억하는 한, 우린 이런 투명성에 대해 은자처럼 조용한 무반응으로 일관했던 적은 없습니다. 정반대였죠. 우린 언제나 우리의 대외이미지에 대해 거의 과대망상증 환자처럼 거창하고 피해망상증 환자처럼 예민하게 반응했습니다. 우리나라의 해외 이미지에 대한 한국 언론들의 기사를 읽고 있노라면 마치 우리가 일당백의 이미지 국제전이라도 치르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올드보이』가 타탄 USA(LA에 있는 영화 배급사;편집자 주)에 의해 미국에 개봉되었습니다. 영화 내용상 당연한 일이지만 극단적인 호평과 혹평이 뒤섞였죠. 이 영화가 일방적인 호평을 받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입니다. 그래도 이 영화의 썩은 토마토 지수(미국의 영화 리뷰 사이트 썩은 토마토에서 영화를 평가하는 지수; 편집자 주)는 83퍼센트로, 꽤 호평입니다.

그런데 뉴욕 타임즈의 마놀라 다기스가 그렇게 호의적이라고 할 수 없는 평 (썩은 토마토 사이트(Rotten Tomatoes 미국의 영화 리뷰 사이트; 편집자 주 )에서는 이 평을 신선한 토마토로 분류했습니다 ‘“Oldboy" is a good if trivial genre movie, no more, no less.’라고 했거든요.)을 내놓자 우리 쪽 언론에서는 와르르 무너집니다. 순식간에 다기스는 뉴욕 타임즈가 되고 뉴욕 타임즈는 미언론이 되며 미언론은 호전적이고 속좁은 미국이 됩니다. 그러는 동안 같은 영화에 대해 진짜 인종차별적이라고 할 수 있는 평을 쓴 뉴욕 옵저버의 렉스 리드는 무시됩니다. 그러다 한참 세월이 지나면 (다시 말해 리드가 그 무책임한 언동 때문에 미언론과 독자들에 의해 한참 씹힌 뒤) 갑자기 그게 뒤늦게 발견되어 또 리드는 미국의 대변자가 되는 거죠.

이런 일들에 대한 정답이 있냐고요? 물론 있습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썩은 토마토는 특정 영화에 대한 영어권 언론의 반응을 알 수 있는 좋은 사이트입니다. 거기만 가서 링크를 두드려만 봐도 『올드보이』에 대한 다양한 평들을 읽을 수 있죠. 다기스처럼 영화보다 영화광들을 비난하는 글도 있고 리드처럼 생각 없이 인종차별농담을 던지는 사람도 있으며 스테파니 자카렉처럼 몇 페이지가 넘는 장문의 심도 높은 분석을 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동네 대장이라고 할 수 있는 로저 이버트는 비교적 조심스러운 리뷰를 쓴 뒤 별 넷을 주었고요. 하지만 대부분의 연예 저널리스트에겐 이 전체적인 분위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뉴욕 타임즈에서 호의적이지 않았다는 게 더 중요해요. 왜냐하면 뉴욕 타임즈는 미국이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언제부터? 왜?)

모든 문화적 교류를 나라 대 나라의 전쟁으로 보는 관점은 우리의 상황을 보면 당연합니다. 실제로 우린 좀 다급합니다. 인터넷과 제트기로 밀접하게 연결된 이 좁은 세상의 밀접도를 생각해보면 지나칠 정도로 투명인간으로 오래 살았으니까요. 중국과 일본, 러시아라는 주변국들이 세계사에서 차지한 무게를 생각해보면 질투도 나고요. 우리가 괜찮은 뭔가라는 걸 빨리 보여주고 싶은 겁니다. 그걸 보여준다고 해도 주변국들이 이미 차지하고 있는 문화적 위상을 따라잡으려면 하안참 멀었지요. 영영 못 따라잡을지도 모르고.

그러나 이런 식의 반응은 쿨하지 않고 우스꽝스러우며 대외적인 설득력이나 효과도 없습니다. 혼자 화를 내고 혼자 흥분하고 가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바깥에 보이다 제풀에 지쳐 아무 것도 안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러다 또 민감해지면 지금까지의 일들이 반복되고요.

결정적으로 이런 반응은 결정적인 사실을 오도하고 맙니다. 예술가와 향유자의 관계는 결국 개인간의 교류라는 것 말입니다. 여기에서 국가나 문화가 무시되어서도 안 되겠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걸 무시하고 이 세계를 점수 따는 올림픽이나 총 안든 외교전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되지요. 예술이라는 건 축구완 달리 숫자나 승패로 간단히 결론을 낼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걸 무시한다면 뻔한 아시아 클리셰와 편견으로 범벅이 된 막연하고 서툰 농담을 썼던 리드보다 우리가 특별히 나을 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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