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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이 가진 힘의 정체를 파고든다 - 『센고쿠』

일본 역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을 꼽는다면, 전국시대와 메이지유신이 먼저 떠오른다. 수많은 영웅이 등장하고, 세상의 모든 것들이 충돌하며 지옥과 천국을 오가는 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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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역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을 꼽는다면, 전국시대와 메이지유신이 먼저 떠오른다. 수많은 영웅이 등장하고, 세상의 모든 것들이 충돌하며 지옥과 천국을 오가는 난세. 천민이 영웅이 되기도 하고, 그 영웅이 한 순간에 개죽음을 당하기도 하는 어지러운 시절이었다. 약간은 차이가 있다. 만화 『바람의 검심』이나 영화 『고하토』 등 수많은 작품의 소재가 된 메이지 유신은 엄청난 격동기이지만, 마지막으로 누가 승리한다 해도 천하를 잡을 수는 없었다. 막강한 군대와 과학기술을 지닌 외세가 있었기에 그 어떤 영웅도 근본적인 한계에 놓여 있었다. 사카모토 료마가 아무리 일본을 근대국가로 이끌려 했어도, 더 이상 천하제패는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비극적 영웅이었다.

하지만 전국시대의 무장들은 다르다. 그들은 천하를 움켜쥐려는 야망으로 가득했다. 근대의 영웅들은 국가를 구하겠다는 일념이었지만, 전국시대의 군웅들은 세계를 창조하겠다는 야망이었다. 모든 세력을 평정하고 모두의 위에 서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오다 노부나가가 천하를 움켜쥐겠다며 야망을 드러냈고 우에스기 켄신, 다케다 신겐, 아사쿠라 요시카게 등과 힘을 겨루었다. 오다 노부나가의 강력한 힘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거쳐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로 옮겨가 에도 막부를 여는 데까지 이른다. 미야시타 히데키의 『센고쿠』는 바로 그 전국시대, 처음으로 천하포무의 깃발을 내건 오다 노부나가의 전쟁을 그리는 만화다. 그런데도 주인공은 오다 노부나가가 아니다. 『센고쿠』는 사이토가의 가신 센고쿠 곤베이의 이력을 쫓아간다.

『센고쿠』는 오다 노부나가의 군대에게 이나바 산성이 함락당해 당주인 사이토 타츠오키가 도망치는 것으로 시작된다. 전투의 와중에서, 사이토의 부하였던 곤베이는 자신이 살아남아야 할 이유를 찾게 된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여인 오쵸와 만나기 위해 반드시 살아남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난 결심했어. 죽어도 살아남겠다고 결심했다구. 난 살아날 거야.” 보통 어른보다 머리 하나는 크고, 월등하게 힘도 강한 곤베이는 홀로 오다군 진영을 휘젓지만 역부족이다. 결국 쓰러져 잡히고, 죽음을 두려워하던 곤베이는 오다 노부나가의 앞에서 시동인 호리 큐타로와 싸우게 된다. “찬란하게 빛나는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으면서도 아무 것도 표현하지 않고 생애를 끝마칠 셈이냐? 진정 살아있는 모습을 보이려면 목숨을 건 싸움을 하는 수밖에. 지금 이 전장에서 어떻게 싸우겠는가. 어떻게 살겠는가? 센고쿠 곤베이.”

곤베이는 오다 노부나가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키노시타 토키치로(토요토미 히데요시)의 밑으로 들어간다. 오다 노부나가는 ‘무로써 천하를 거머쥐겠노라 공언한 공포의 마왕’으로 흔히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지혜로써 나라를 차지하고, 큰 위엄과 섬세한 배려를 가지고 부하를 따르게 하는 명장’이었다. 곤베이는 토키히로의 밑에서 무공을 익히고, 인생을 배운다.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평민 출신이며, 오로지 말뿐이고 싸움 실력이 뛰어나지도 않은 토키치로 역시 범상치 않은 인물이다. 아니 곤베이가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빛을 발한다. 난세는 영웅을 만드는 법이고, 은거해 있던 수많은 재능이 작렬한다. 『센고쿠』는 그 수많은 영웅과 호걸들의 싸움을 드라마틱하게 그려낸다.

『센고쿠』의 곤베이는 일본 만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열혈 주인공이다. 그는 전쟁에 자신의 목숨을 걸고, 무엇이 정의인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앞으로만 전진한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역사는 그렇게 움직인다. 누군가의 행동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라 함께 앞으로 나아가면서 조금씩 역사가 흘러가는 것이다. 처음에 영웅을 이끄는 것은, 바로 욕망이다. 오다 노부나가가 천하를 원하는 것처럼, 곤베이는 오쵸를 원한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그들은 앞으로 나아간다. 전국시대의 흐름을 바꿔놓은 것으로 평가되는 카네가사키 퇴각전을 앞두고 토키치로는 말한다. “여기서 죽어도 제법 나쁘지 않은 인생이지....하지만 가족을 위해, 출세를 위해, 여자를 위해. 뭐든 좋다. 뭔가 하나라도 살아남을 이유가 있다면 그걸로 된 거다!”

살아남은 토키치로는 절친한 친구이며 전략가인 한베에를 만나러 간다. 그리고 그를 설득한다. “그냥 욕망이지...자넨 그저 소수로 성을 점령하고 싶다는 터무니없는 난업을 해내고 싶었던 거야. 그리고 단순한 욕망이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 것은 네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쪽의 인간이라는 소리다. 욕망이 없는 척 하지 마! 솔직히 말하지. 난 이나바산의 난 때의 널 갖고 싶다...네 재능으로 행동을 일으키면 사람들은 언제나 칭송을 하지. 허나 그 칭찬과 함께 따라붙는 것은..시기...반감...증오...이 곳에 틀어박혀 있는 건 그런 것들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것뿐이야. 사는 것이 아니라면 죽은 것이야.....한베에. 만약 살고 싶다면...내가 지켜주마. 네가 따라붙는 악의 따위는 내가 전부 뒤집어 써주겠다!!”

그렇게 영웅이 만들어진다. 『센고쿠』는 어떻게 영웅이 만들어지고, 어떻게 그들이 만나고, 어떻게 살고 죽는지를 처절하게 보여준다. 『센고쿠』의 영웅들은 살아남고자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다. 살아남으면서, 그들은 성장한다. “산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인가. 전쟁이란 이렇게나 사람을 믿음직스럽게 만드는 것인가....세상을 버리고 암자에 틀어박혀 있는 나는 살아있는 것이 아니란 뜻인가”라는 한베에의 말은, 가슴에 울린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바라보기만 하는 자는 결국 죽어가는 것이다. 그것이 게으름이건, 두려움이건 상관없이. 오다 노부나가가 위대한 영웅이었던 것은 바로 그런 이유다. 오다는 그렇게 영혼이 죽어있는 인간을 결코 용서하지 않았다. ‘무사의 본분은 실패를 했을 때 비로소 나타나는 법. 배를 갈라 책임을 회피할지...사선을 넘는 생명력을 가지고 실패를 뛰어넘는 무공을 쌓을 것인지 말이다. 우리 군의 무사는 실패를 두려워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을 악으로 여긴다. 그리고 실패했을 때 그것을 숨기고 얼버무리는 것이야말로 극악.’ 그것이 오다를 공포의 마왕이라 부른 이유였지만, 그것이야말로 시대를 만들어낸 힘이었다. 『센고쿠』는 그 영웅들의 힘과 마력이 무엇인지를 파고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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