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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심리학자들의 차가운 실험이 세상을 바꾸다 –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인식의 기반을 뒤흔드는 열 개의 놀라운 실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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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과학사에 기록될 만큼 커다란 논란과 이슈를 남겼던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이 이제 서서히 그 윤곽을 드러내는 모양입니다. 모든 의혹과 쟁점을 제쳐놓고 밝혀진 사실만을 가지고 이야기하자면 그는 분명 논문을 조작하여 과학자의 기본 의무를 어겼고, 그 뒤로도 끊임없는 거짓말로 사태를 일관하여 계속 대중의 실망을 얻은 상태입니다. 그러나 그의 논문조작이 사실로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에 사람들이 남기는 수많은 리플 속에는 아직도 황우석은 특정 세력에 의해 희생된 순수한 과학자라는 의견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느 학자는 거짓임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황교수에 대한 지지가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는 현상을 가리키면서 ‘인지 부조화’ 이론을 꺼내 듭니다. 인지 부조화 이론은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 교수가 1957년에 처음 발표한 이론으로, 인간의 마음 속에 양립 불가능한 생각들이 동시에 나타나 심리적 대립을 일으킬 때, 인간은 적절한 조건 하에서 자신의 생각에 따라 행동을 바꾸기보다는 행동에 따라 스스로의 믿음을 조절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 사례를 만들어 보이기 위해 페스팅거는 종말을 예언한 어느 사교 집단에 스스로 잠입하여 종말이 발생하지 않았을 때 신도들이 어떤 입장을 갖게 되는지를 관찰합니다. 세계가 물에 잠길 것이라는 예언을 따라 모인 신도들은 예정된 시각에 홍수가 일어나지 않자, 밤을 새며 모여있던 신자들의 힘으로 신이 세상을 구원하기로 마음을 바꾸었다는 이야기로 입장을 선회합니다. 단순히 미국의 사례뿐 아니라 우리는 1992년 TV 생중계까지 이루어지며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다미선교회의 휴거 소동 속에서 일어나지 않은 종말에 대해 입장을 바꾸는 신도들을 본 적이 있고, 줄기세포가 없었다는 사실 발표 속에 음모론을 제기하는 네티즌들을 봅니다. 오늘 소개하는 책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는 심리학을 다룬 책이지만, ‘~~하면 ~~하다’는 근거 없는 일대일 대응 식의 심리결과 나열이나 딱딱한 심리 이론의 설명에만 주력하지 않고 위에 언급한 것과 같은 심리학의 결정적 실험 장면들에 충실한 책입니다. 작가는 현대 심리학에서 당대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던 심리학과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선입관을 ‘들이 깨는’ 실험 결과들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등장했는지를 마치 옆에서 지켜보는 것처럼 서술하며, 실험자와 피실험자 등을 직접 만나 실험에 대한 회고와 오늘날의 삶을 에세이처럼 풀어 냅니다. 수록된 10개의 위대한 실험들은 주로 개인의 심리보다는 사회와 집단 속에서 인간 개체가 ‘왜 그런 선택을 하는가?’에 대한 연구들로, 마약중독과 집단 윤리실종, 권위에의 복종 등에 대한 흥미로운 접근을 시도합니다. 인간의 본성을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통해 밝혀내기에 이들의 연구는 때로는 잔인하고 비윤리적이며 그 결과는 스산하기까지 합니다. 현대 심리학에서 가장 유명한 스키너는 자신의 보상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심지어는 자신의 딸까지 스스로가 고안한 상자 속에서 키웠고, 스탠리 밀그램은 인간이 권위에 어떻게 복종하는지를 연구하기 위해 피실험자들을 속이고는 상대에게 강력한 전기 충격을 주도록 권위로 강요하는 고통을 주기도 합니다. 비단 인간뿐 아니라 이는 동물에게도 적용됩니다. 스킨십에 관한 연구로 유명한 해리 할로는 갓 새끼를 낳은 원숭이 모녀를 떼어내고 새끼에게 철사로 만든 젖 나오는 어미와 부드러운 천으로 만든 먹이 없는 어미를 주어 애정을 실험하는데, 이 과정에서 어미는 새끼를 잃은 비통함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새끼는 끝내 정상적인 성격 형성에 실패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싸늘함에 대해 비난의 눈초리만을 보내기엔 이들의 열정과 그 결과물이 놀랍습니다. 원숭이 어미와 새끼를 격리시켜 애정의 조건을 실험한 해리 할로는 그 이전까지 일반적으로 여겨지던 상식, 새끼는 어미에게서 먹이(젖)를 구함으로써 애정의 조건을 형성한다는 통념을 깨고 부드러운 스킨십이야말로 애정이 발생하는 첫 번째 조건임을 증명합니다. 자신과 친구들을 정신병자로 위장하여 직접 정신병원 속으로 들어간 데이비드 로젠한은 수십 일간의 병동 감금이라는 위험을 감수하여 마침내 현대 정신의학이 정신병자를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고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들마저도 모두 정신병자로 취급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밝혀냅니다. 이러한 연구들은 인간이 사회 속에서 행동하는 방식에 대해 일정 부분의 설명을 내놓으며 우리에게 일정량의 희망과 일정량의 절망을 동시에 안겨줍니다. 나치 대학살은 엄격한 독일식 교육에 의해 명령에 순응하도록 길러진 독일인들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상황만 주어진다면 당장 내 옆의 누군가도 불합리한 명령에 순응하여 나를 가스실에 밀어넣고 밸브를 열 수 있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밀그램의 실험 결과는 언제든 현대 사회에 또 한번의 공포 정치가 도래할 수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암시합니다. 그러나 암울한 결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름다운 환경 속에 살고 있는 쥐들이 마약에 중독되지 않는 실험결과를 토대로 좋은 환경과 즐거운 사회가 마약중독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을 편 브루스 알렉산더의 연구에서 우리는 현대사회의 암울한 그늘을 없앨 가능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도 있듯이 알기 어려운 ‘사람 속’을 과학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파고드는 열 명의 심리학자들과 그들의 실험 모습을 저자 로렌 슬레이터는 이론과 실험에 대한 설명과 데이터 나열이 아니라 이야기식 문체를 통해 그려 냅니다. 그는 실험의 진행 과정과 동기, 심리학자들이 발표한 결과가 몰고 온 사회적 파장 등을 순서에 따라 옆에서 지켜보는 것처럼 그려내고 있어 생동감을 자아냅니다. 스키너의 딸이 스키너의 횡포에 못 이겨 자살했다는 루머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 저자는 스키너의 두 딸에 대한 인터뷰를 시도하고, 아직까지 살아있는 연구자들을 직접 만나고 그들의 실험실과 서재를 찾아가 스케치합니다. 심리학에 대한 소개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심리학자 개인의 모습과 그가 연구하던 환경까지를 모두 담는 이러한 에세이식 서술은 열 개의 실험이 주는 흥미로움과 더불어 책의 재미를 구성하는 주요한 토대입니다. 독자들이 받는 감흥은 그래서 일반 심리학서와 달리 감상적인 느낌 또한 강하며 지독하게 차갑고 냉정해 보이는 심리학 연구실에서 홀로 고독과 싸우는 심리학자의 외로운 단면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요소입니다. 사회는 인간 개개인이 모여 만드는 군집체입니다. 사회를 알기 위해서는 그래서 개개인의 행동에 ‘왜?’라는 물음표를 붙이고 그에 합당한 설명을 과학적으로 끌어내기 위한 작업이 가장 기본적인 연구가 될 것입니다. 세상과 인간에 대한 인식의 기반을 바꾼 열 개의 심리실험이 이루어지는 과정과 그 여파를 밀도있고 재미있게 소개한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는 사회와 개인, 재미 어느 하나 놓치지 않고 독자들을 현대 심리학의 안쪽 깊숙한 곳으로 안내합니다. 아직까지도 ‘왜 저럴까?’라는 의문을 놓을 수 없는 일들이 끊임없이 벌어지는 인간들의 사회 속에서 해답과 희망을 찾아볼 수 있는 작은 근거가 될 수 있을 책입니다. ---------------------------------------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는 어떤 책?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와 같이 인간 심리와 본성에 관한 가설과 이론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20세기 천재적인 심리학자와 정신 의학자들의 위대한 심리실험 10가지를 소개하고 있다. 저자는 10가지 실험을 이야기로 풀어내면서 그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 어떤 현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질문하면서 동시대적 관점에서 재조명하고 있다. ‘인간의 행동은 보상과 처벌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스키너의 행동주의가 습관에 의해 움직이는 쥐들의 신경적 상관물을 연구하는 오늘날의 신경생리학자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의 식이다. 실험자와의 인터뷰와 개인적인 체험이 살아있는 생생한 서술 방식을 통하여 독자들에게 실험의 탄생 배경과 맥락, 함축적 의미까지를 소개하고 있다. --------------------------------------- 저자 로렌 슬레이터는 누구?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작가, 칼럼니스트. 하버드 대학과 보스턴 대학에서 심리학을 공부했다. 현재 정신과 진료소 에프터케어 서비스의 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1994년과 1997년 ‘미국 최고의 수필상’을 두 차례 수상하였고, 1993년 ‘뉴 레터 문학상’ 논픽션 부문 창작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Love Works Like This』『Prozac Diary』등이 있다. 현재 남편과 매사추세츠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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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로렌 슬레이터> 저/<조증열> 역13,500원(10% + 5%)

인간 심리와 본성에 관한 가설과 이론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 20세기의 위대한 심리실험 10가지를 소개하고 있는 이 책은, '인간은 왜?'라는 작은 의문에서 출발하여 인간의 자유 의지와 복종, 군중 심리 등 인간 심리와 관련된 핵심 주제를 심도있게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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